김환기 매화와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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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는 “사람이 어떻게 흙에다 체온을 넣었을까” 감탄하며 백자 달항아리를 유독 사랑했다. 그 푸근한 모양이 상 차리는 어머니의 둥근 등짝 같지만 초라하지 않으며, 돌아앉은 마누라의 엉덩이 같다고 해도 천박하지 않다. 그렇게 말한들 백자의 아름다움이 퇴색할 리 없어서다. 화려한 수사는 미인의 두꺼운 화장에 불과하다. 화가는 둥근 달과 백자 항아리를 겹쳐 하늘에 띄웠다. 파리에서 지인에게 편지를 쓴 김환기는 “내 예술은 하나 변하지가 않았소. 여전히 항아리를 그리고 있는데 이러다간 종생 항아리 귀신만 될 것 같소” 하더니, 훗날 달을 두고는 “프랑스에서는 달보고 바보라는 말이 있다…그렇다면 달은 동양의 것일까. 불원해서 달도 정복될 모양이니 달의 신비가 깨뜨려지는 날에는 나도 태양이나 별을 그리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흔히 김환기를 두고 추상미술에 한국적 서정성을 더한 사람이라고 한다. 1963년 미국으로 가 록펠러재단이 후원하는 뉴욕 맨해튼 73가의 예술가 아파트에 살면서 그는 거대한 문명 앞에서 청연한 자연을 노래했고 회화의 순수 그 자체를 탐구했다. 미국의 ‘추상표현주의’가 전후 미술가들의 희망·분노·공포의 감정을 드러냈고, 그 일파인 ‘색면추상’이 색만으로 사색을 이끌어냈다면 김환기의 추상은 감정적이지 않으나 은근한 한국의 정서를 담았고 점·선·면을 반복하는 노고를 통해 정신성을 보여줬다. 키보다 큰 화폭을 수만 개의 점으로 채운 1970년대 전면 점화(點畵)가 연거푸 4번이나 한국 미술경매 최고가를 경신한 이유다. 조국과 고향을 생각하며 김광섭의 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읊조리며 찍은 점. 실제 그림을 보면 점은 그냥 점이 아니라 그리운 이의 눈동자다. 단번에 찍은 게 아니라 한번 찍고 그 번짐과 울림을 관찰하며 또 찍고 바라보다 마르면 또 찍기를 예닐곱 번 거듭해 점 하나가 완성된다. 어떤 눈은 기뻐서 울고 어떤 눈은 서러워 울고, 어떤 눈은 호기심으로 가득하고 어떤 눈은 기쁨으로 충만하다. 물론 개중에는 원망하는 눈동자, 외면하는 눈동자가 없으랴만. 공감이나 서정성은 50~60년대 반(半)구상 반(半) 추상의 그림이 탁월하지만 미술시장은 말년작이 된 전면점화에게 승기를 안겼다. 과거의 자신을 버려낸 “자기(自己)를 이긴 화가”임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출처 : https://www.sedaily.com/NewsView/1OD87STK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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