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로디시아스 [Aphrodisias] (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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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로디시아스
아프로디시아스(Aphrodisias)는 터키 남서부 지역 고대
카리아(Caria)의 모르시너스(Morsynus) 강이 만들어낸
비옥한 골짜기 안에 있다. 아프로디시아스 유적지의 역사는 후기금석병용 시대(Late Chalcolithic Period)부터 시작된다.
아프로디시아스라는 도시가 형성된 때는 미앤더(Meander) 골짜기에서
도시화가 집중적으로 일어났던 기원전 2세기경이다. 도시는
이후 아프로디테 여신의 신전을 중심으로 격자 구조로 발전하였다. 술라(Sulla)
장군,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는
물론 아우구스투스(Augustus) 황제 역시 아프로디테 여신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으므로, 아프로디시아스는 로마와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 고대 로마의 원로원으로부터 ‘면세’의 정치적 특권을 누린 아프로디시아스는 예술과 조각술에서 큰
명성을 쌓으며 발전을 거듭하였다. 로마 제국시대 이후 아프로디시아스는 고대 후기와 중세기 동안 비잔틴
제국의 통치 아래에 있었다.
아프로디테 여신의 숭배는 아프로디시아스에서 가장 중요한 신앙이었다. 아프로디시아스의
성전에는 이 도시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특별한 아프로디테 조각상이 모셔져 있었다. ‘아프로디시아스의
아프로디테(Aphrodite of Aphrodisias)’라고 알려진 이 여신상은 소박하고 예스러운
모습을 지닌 다산의 여신으로서 아나톨리아의 지역적 특성이 표현된 동시에 사랑과 미(美)의 여신인 그리스 아프로디테의 특성이 잘 융합되어 있다.
이러한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조각상은 종교적 ‘수출품’으로써 아나톨리아에서 로마로, 로마에서 레반트까지 지중해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아프로디시아스의 아프로디테’의 숭배는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수용한 이후에도 여전해서 아프로디테 사원이 교회로 이용되는 서기 500년
즈음에 이를 때까지 그 정신이 지속되었다.
대리석 채석장과 인접했던 덕분에 아프로디시아스는 고품질의 대리석 조각품 생산 중심지가 되었고 이러한 이유로
이 지역은 로마 제국 전체를 통틀어 유명한 조각가들을 배출할 수 있었다.
아프로디시아스는 장구한 세월 동안 수준 높은 조각품을 생산했다. 이
사실을 통해 현대인들은 인류문화사적으로 독창적인 장소로서 아프로디시아의 역할을 알 수 있으며, 사회적
상호작용이 일어났던 지역적 상황에서 발전하게 된 기념비적 고대 예술품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
현대의 학술계도 대리석 공예 기술과 최상의 숙련된 솜씨, 지역 특색의 수준 높은 예술적 디자인, 고급스런 인물 조각상 등을 통해 아프로디시아스의 고유한 지위를 인정하고 있다.
또 아프로디시아스 유적의 도시 구조에는 그리스-로마의 정치 · 문화 체계의 독특한 특징이 표현되어 있다. 이전의 시대와 뚜렷하게
차별화된 모든 공적 시설물과 기념물이 남아 있는 이 유적지는 로마 시대의 아나톨리아라는 독특한 도시 문화 안에 그리스로마시대의 도시 체계 및 계획의
특징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다. 더욱이 카리아 지방의 다른 어떤 유적보다도 고고학적 관점에서 보존 상태가
훌륭하기 때문에 현대의 학자들은 아프로디시아스를 특별히 헬레니즘 및 로마시대에 있었던 카리아 성전의 전형을 대표하는 훌륭한 전범으로서 인정하고
있다.
아프로디시아스의 세계주의적(그리스, 로마, 카리아, 이교도, 유대교, 기독교) 사회
구조는 아프로디시아스만의 고유한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은 지금까지도 거주지의 구조를 통해 가시적으로
표현되고 있을 뿐 아니라 유적지에서 발견된 2,000점의 명문(銘文)의 기록을 통해서도 풍부하고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상의 언급된
유적지의 모든 특징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아프로디시아스의 세계사적 중요도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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