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배덕 ‘나쁜 남자’ 바그너, 예술에선 위대한 개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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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는 리스트의 딸인 코지마와 오랜 불륜관계였다
여성들은 왜 나쁜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일까. 혹자는 여성이 본능적으로 센 유전자를 가진 남성에게 끌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남을 괴롭히는 일은 동물의 세계에서는 강한 자의 특권이니까. 다른 이들은 그것을 금지된 것을 향한 갈망으로 설명한다. 가지기 힘들수록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법이라면서. 모성 본능이 강한 여성들이 나쁜 남자를 자신의 노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으나 누가 봐도 나쁜 짓만 하고 무뢰한 사람이 사랑을 받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가장 충격적인 스캔들은 그의 동지이자 은인이었던 리스트의 큰딸 코지마와의 불륜이었다. 이들의 관계는 코지마가 리스트의 애제자인 한스 폰 뷜러와 결혼해 신혼여행을 가는 길에 아버지의 지인인 바그너를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젊은 그녀와 관계를 지속하고 싶었던 바그너는 남편인 뷜러를 자기 오페라 공연의 지휘자로 캐스팅해서 이 부부를 뮌헨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코지마가 자기 자서전을 위한 구술을 받아 적어야 한다며 아예 자기와 같은 빌라에 살도록 했다. 코지마는 바그너와 사이에서 두 딸과 아들을 차례로 출산했고, 아이들의 이름을 바그너 오페라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짓는다. 그런데도 이들의 관계를 알지 못했던 뷜러는 충실한 바그너의 추종자로서 그의 작품을 열성적으로 지휘했다.
이 정도의 파렴치한이라면 바그너는 온통 적으로 둘러싸여 고독하게 인생을 마감했을 것 같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수없이 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바그너는 친구를 사귀고 관계를 유지하는 데 별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는 늘 주변 사람들을 배신하고 화나게 했지만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았다. 예술적 재능뿐 아니라 놀라운 언변과 유려한 글솜씨도 그에 한몫했을 것이다. 그가 내뿜는 카리스마와 아우라는 주위 사람들을 자신의 충실한 후원자로 만들었다. 바그너 전문가인 음악학자 어네스트 뉴먼은 바그너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불꽃”이었다고 말한다.
바그너의 큰 흠결로 지적되기도 하지만 히틀러로부터의 숭배 역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계사에서 그 어떤 예술가도 히틀러 같은 강력한 최고 권력자에게 그토록 전폭적인 찬양을 받은 사례를 찾기 힘들다. 비록 그것이 그의 사후에 벌어진 일이라고는 해도 그렇다. 강력한 독일 제국을 꿈꾸었던 히틀러에게 바그너는 단순한 예술가가 아니라 게르만 민족의 위대함을 예술로 증명한 천재이자 영웅이었다. 독일의 민중적 영웅 서사시와 설화에 토대를 둔 작품을 통해 독일 정신과 민족적 정체성을 구현했던 바그너만큼 독일민족의 우월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낸 예술가는 없었기 때문이다. 바그너가 자신의 삶과 작품 속에서 일관되게 반유대주의적 태도를 견지했던 것도 히틀러가 바그너를 예찬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히틀러는 바이로이트의 바그너 축제에 해마다 참석하여 이 극장을 독일민족의 성지이자 나치교의 신전으로 만들어버렸다.
(민은기 서울대 음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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