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몽상가 아닌 현실주의자 (마르크 샤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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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위에서(over town) 1918] 마르크 샤갈
Tretyakov 갤러리(모스크바, 러시아), Oil, Canvas, 45 x 56 cm
샤갈은 사람과 집 등 형태 밖으로 확장하지 않아 이해하기 쉽다.
1914년 샤갈이 결혼한 몇주 뒤 1차 세계대전 발발로 러시아 국경은 봉쇄되었다.
이 그림은 이런 충격을 담아 그린 것이다.
소중한 아내 벨라를 안고 하늘로 올라가 현실의 위험을 피하고자 하는 은유로 보여진다.
샤갈과 벨라가 어둡고 긴장한 얼굴로 마을을 내려다본다.
샤갈은 이 부분을 잘 드러내기 위해 ‘색채와 형태를 변형’하고 있다.

산책(The Promenade) 1918 마르크샤갈
Oil, Canvas, 169.6 x 163.4 cm
작품 도시 위에서 보다 이 작품의 색채가 밝고 인물들의 표정 또한 행복해 보인다.
‘산책’은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 러시아에 머물며 딸 이다를 낳고 나서 그렸다.
샤갈은 정면으로 두 다리를 벌리고 미소 짓는 모습으로 당당히 서 있다.
마치 소중한 딸을 얻은 아빠로서 현실을 감당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듯하다.
아내는 유대교 회당에서 느껴지는 색감으로 표현하면서 안전한 하늘에 올려놓고 있다.
이것은 그녀를 지키고 싶은 시적 표현이며 은유로 보인다.
“나는 몽상가 아닌 현실주의자”
샤갈은 자신을 초현실주의자라는 평가에 대해 저서 『나의 인생 Ma Vie』을 통해
“나를 몽상가라 부르지 마라! 나는 현실주의자다”
“그것은 비이성적 꿈이 아니라 실체의 추억을 그린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런 샤갈의 언급처럼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표현은 세상을 적극적으로 바라보며 이해하고 화해하는 몸짓으로 보여진다.
마을은 단순한 색채(야수파 영향)와 입체(큐비즘 영향)로 표현했다.
‘도시 위에서’보다 ‘산책’에서 나타난 마을의 풍경은 더욱 단순하게 그려지고 있다.
샤갈은 색채와 형태를 자유롭게 쓰고 있다.
과학적인 자연주의도 아니고, 빛의 영향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입체파처럼 화면 전체가 입체로 나타나지 않아 샤갈과 벨라의 얼굴 표정이 잘 드러나 있다.
결론적으로 그는 여러 유파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어느 유파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샤갈은 ‘형식이 아닌 내용의 혁명이 되게 해다오’라는 말로
형태와 색채 모두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는 것을 중요시했다.
모든 것을 녹여내어 결국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만든다.
샤갈은 인상주의가 해체되는 시기에 태어나
사진기의 등장이 가져온 현대미술의 다양한 예술 양식을 사용하며 성장한 화가다.
현대미술이란 조개에서 고난을 통해 진주와 같은 화풍을 만들어냈다.
그는 세상에 고난을 이겨내게 하는 ‘사랑의 색’을 보여준 화가다.
송민 갤러리32 대표 gallery3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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