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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水原華城)-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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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77회 작성일 23-10-14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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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수원화성을 몇 번 들렀을 때, 방화수류정, 동북공심대 등을 부분적으로 찾은 적은 있으나, 수원화성 전체를 돌아본 적은 없었다. 약한 체력에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한번 돌아보겠다는 의지가 없었던게  더 맞는 표현이겠다. 그러다가 최근에 수원화성에 관한 책을 본후, 수원화성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어 "까짓거, 한번 해보자"하고 1호선 전철을 타고 수원역으로 향했다. 


화성의 총길이는 6km 가까이 되고, 남북을 가로지르는 수원천을 중심으로 동쪽은 평지와 낮은 구릉위에, 서쪽은 팔달산 능선위에 성이 뺑둘러 세워져 있다. 수원천의 북쪽인 북수문(화홍문)을 출발점으로 하여  시계방향으로 성곽길을 따라가기로 했다.


수원천 위에 세워진 화홍문과 언덕위에 세워진 방화수류정 (동북각루)은 화성 제1의 경승지답게 경관이 빼어났다. 화홍문은 성벽감시 및 수문의 역할을 하며, 화성의 무지개라는 이름뜻대로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방화수류정은 주변감시 및 화포가 설치돼있던 곳이다. 정조가 현륭원 방문을 마친후 방화수류정 2층에 올라, 화살 3발을 쏘고 주변경치를 노래한 시가 전한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는 방화수류정 (訪花隨柳亭)에서 정조의 풍류가 7언절규의 시에 잘 나타나 있다.


"봄날 성을 두루 돌아도 해는 아직 지지 않고

작은 정자에 구름낀 경치 더욱 맑고 아름답구나

난기가 연이어 3번 맞춤을 알리니

수많은 버드나무 그늘속에 살촉이 꽃과 같네"


성벽을 따라 걸으니 동장대가 나온다. 이곳은 군사지휘부인 서장대와 달리 군사들의 훈련장이다.


이어 동북공심대의 높은 원통형 건물이 나온다. 주변감시와 공격용이며 내부는 비어있고 나선형의 계단이  3층까지 이어진다.


동쪽에 위치한 창룡문은 동쪽을 상짐하는 용을 나타낸다. 팔달문(남문)과 장안문(북문)은 2층 누각으로 지어졌지만 창룡문과 화서문(서문)은 1층으로 문의 격이 낮다. 특히 장안문은 수원행성의 대표문이다. 한양도성의 대표문은 숭례문 (남대문) 이지만, 수원화성은 왕이 계신 북을 바라보는 문이며, 왕의 행차시 북문인 장안문으로 입성하기에 장안문이 대표문이며 실제 남대문보다 더 크다.


남쪽의 동남각루를 지나면서 부터 성이 끊어졌다, 실제 팔달문의 서쪽 200m구간, 동쪽 동남각루 사이의 400m 구간에 남문시장이 들어서 있어서 원상태로 복원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서울의 남대문처럼 시가지의 중심에 서있는 팔달문은 동대문처럼 반달형의 옹성을 갖추고 있다. 정조가 헌륭원을 참배할 때에 이 문을 통해서 갔다한다. 사람들이 팔달문을 팔딱문이라고 부른다고 했던, 수원에서 중학교를 다녔던 한 고교 친구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팔달문 안내소에서 안내원이 팔달산은 높이가 145m이며 계단도 540개가 넘는다 한다. 급경사 오르막길 위쪽으로 가파른 계단들이 1자로 죽 뻗어있는 걸 보는순간, "아이쿠, 고생 좀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침에 동네산을 갔다온 데다가 화성도 거의 반가까이 걸었기에 걸음수를 확인해보니 벌써 10,000보를 훨씬 넘었다. 그렇다고 포기하기는 뭐하기에 저멀리 윗쪽의 계단은 쳐다보지 않고 바로 눈앞만 보고 걸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이 차는 것을 겨우 견디며 산능선자락인 서남암문에 올랐다. 화성에 있는 5개의 암문은 비상시의 출입을 위한 문인데, 서남암문은 지형상 적에게 빼앗겨서는 안되는 곳이기에, 암문 뒤에 군사들이 머무는 포사를 세웠다.


그런데, 서남암문 근처에 '3.1독립운동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일제가 수원의 3.1운동때 시위군중에게 맞아죽은 일본순사 노구찌의 추모비를 세웠는데, 해방후 그 비를 허물고 그자리에 3.1 독립운동 기념비를 세웠다. 그 자리가 증포산이었는데, 그후 사람들의 많이 볼 수 있는 이곳 팔달산으로 옮겼다한다.


효원의 종각이 보인다. 안내문에 부모, 가족, 자신을 위한 기원으로 3번을 타종할 수 있단다. 요금은 1,000원 (1~2인), 2,000원(3~4인)으로 아주 싸다. 한 외국여자가 타종을 하려고 하기에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니, 좋다며 포즈를 취한다. 내가 타종을 하려니까, 기다리고 있다가 사진 찍어준다며 폰을 달라고 한다. 똑똑한 여자네. 내가 찍어 준다는 뜻을 금방 눈치챘네.


화성장대(서장대)에 오르니, 남한산성의 서장대가 생각난다. 이곳은 팔달산 정상이며, 아래로 내려가면 화성행궁이 있다. 정조가 이곳에 올라 군사훈련을 거행했다하며, 정조가 친히 쓴 현판인 '화성장대'와 안쪽 천장에 정조가 쓴 시가 걸려있다. 여기에 정조의 시를 소개한다.


화성장대친열성조유시재우미상

(화성장대에서 성안에서 군사훈련을 하는 것을 보시고 친히 시를 지어 처마 위에다 씀)


공호사위중 경영불비노

성종평지형 대의원천고

만타규모장 삼군의기호

대풍가일주 홍일재린포

(현륭원을 호위하는일도 중대하지만, 재용을 허비하지도 백성을 수고롭게 하지도 않았네

성은 평지를 따라 둘러있고 장대는 먼하늘에 기대어 높이 솟았네.

수많은 성가퀴(여장)는 규모가 장대하고 삼군의 의기가 호쾌하네

대풍가 한곡조를 연주하니 붉은 해가 비늘갑옷 위에 비추이네)


나의 한자, 한문시력으로, 이 현판의 시를 현장에서 제대로 읽어내기도 해석하기도 쉽지 않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돌아와서 도서관을  찾아가서 시의 제목 및 내용등을 해석해 낼 수 있었다. 


이제는 역사유적지 및 시서화등에서 한문으로 쓰인 싯귀나 기록등을 한글번역을 병기해놓아, 많은 사람들이 현장에서 바로 읽고 해석해주는 문화유산관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또 좀 더 손쉽게 QR코드를 그려넣어 관람자가 스마트폰으로 내용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개발되어야 할것으로 생각한다.


서이치, 서포루를 지나며 내리막길이다.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이 나오는데, 서로 어우러져 멋진 자태를 뽐낸다. 화서문 밖으로는 시가지가 넓게 펼쳐져 있고 사각의 서북공심돈은 원통형의 동북공심돈과는 대조적인 멋을 풍긴다. 다시 마지막 종착지인 장안문에 도착했다. 수원화성의 정문으로 당당한 위용을 갖추었으며 반달형의 옹성을 갖추고 있다. 수원사람들은 이 장안문이 서울의 남대문보다 더 멋지고 위풍당당하다고 말할 것 같다.


수원화성 순례를 끝냈다. 다리도 아프고 힘도 들지만 뿌듯하고 숙제를 끝낸 느낌이다. 이제는 돌아가서  지금까지 눈과 몸으로 느꼈던 것을 책과 인터넷으로 다시 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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