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2부 장강의 영웅들 (289) 제37장 오월(吳越) 전쟁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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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장 오월(吳越) 전쟁 (7)
겨우 포위망을 뚫고 목숨을 구한 월왕 구천(句踐)은 고성 땅에 이르러 육지로 올라왔다. 하지만 오군(吳軍)의 추격은 더욱 거셌다. 그들은
고성(固城) 땅을 겹겹이 포위하고 성안으로 이어지는 물줄기를
모조리 끊어버렸다.
뒤늦게 오자서의 병이 적을 끌어들이기 위한 계책이었음을 안 오왕 부차(夫差)는 몹시 기뻐했다. 오자서가 고성을 포위하고 있다는 소식에 그 자신도
나머지 군사를 이끌고 고성으로 달려왔다.
"과연 경(卿)은 천하 영걸이오."
오자서(伍子胥)가
허리를 숙이며 사죄했다.
"본의 아니게 왕을 속인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적을 속이기 위해서는 나부터 속여야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았소. 그나저나 언제쯤이면 월왕을 무릎꿇게 할 수 있겠소?"
"열흘 안에 월왕(越王)의 항복을 받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어째서 열흘이오?"
"고성 안으로 들어가는 모든 물줄기를 끊어 놓았기 때문에
열흘이 지나면 저들은 목이 말라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자서(伍子胥)는
알지 못했다.
고성 안에는 낮은 산이 하나 있었는데, 그 꼭대기에 영천(靈泉)이란 마르지 않는 샘이 있다는 것을.
열흘이 지나도 고성(固城)안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오자서가 이상하게 여길 때 성안에서 사자가 나왔다. 오자서(伍子胥)는 이제야
항복 사자가 왔나보다 싶어 얼른 그를 맞아들였다.
그런데 사자가 내민 것은 항복 문서가 아니라 방금 잡은 듯한 싱싱한 물고기였다.
비로서 고성 안에 샘물이 있음을 안 오자서(伍子胥)는 다시 고성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구천(句踐)은 이미 사흘 전에 고성을 빠져나간 뒤였다.
그 무렵.
월왕 구천(句踐)은
회계산에 도착하여 패잔병을 점검하고 있었다.
회계산은 지금의 절강성 소흥현 동남쪽에 위치한 산으로, 당시
월나라 도성인 제기(諸曁)와 매우 가까웠다.
남은 병사는 5천여 명.
그나마 부상자가 반 이상이었다. 그들로서는 도저히 오군에게 반격을
가할 수가 없었다. 월군(越軍)은 재기불능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월왕 구천(句踐)은
침통한 표정으로 탄식했다.
"내가 범려와 문종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 이 지경이
되었구나. 이 일을 어찌할꼬. 이 일을 어찌할꼬?"
또 급보가 날아들었다.
- 고성을 함락시킨 오자서(伍子胥)가 회계산으로 진격해오고 있는 중입니다.
구천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자신도 모르게 군사 범려를 돌아다보았다.
살아날 계책을 마련해보라는 간절한 눈빛이었다.
범려(范蠡)가 못
본척 입을 다물고 있자 구천(句踐)이 다시 말했다.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이 위기를 타개해나가는 사람에게는
경(卿)으로 삼아 월나라의 국정을 함께 논의하리라!"
얼마나 다급했으면 이런 말을 할까.
범려(范蠡)가 보다
못 해 한마디 던졌다.
"장사를 잘하는 상인은 여름에는 가죽을 사들이고 겨울에는
홑옷을 사며, 가뭄이 들 때는 배를 사고 장마가 질 때는 수레를 사두어 물건이 모자랄 때를 기다립니다. 왕께서는 우환이 없을 때는 그냥 지내다가 회계산에 갇힌 뒤에야 모신(謨臣)을 구하니, 이는 너무 늦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일종의 야유였으나 구천(句踐)은
그런 것을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만일 지금이라도 그대의 말을 듣는다면 아주 늦은 것이
아니질 않소?"
구천이 이렇게까지 몸을 낮추며 애걸하자 범려(范蠡)는 그제야 입을 열어 아뢰었다.
"우리 나라가 종묘사직을 보존하는 길은 딱 한가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오?"
구천의 눈동자에 희망의 빛이 스쳐갔다.
"오(吳)나라에 예물을 보내 화평을 청하는 것입니다."
"2년 전 우리는 오왕 합려를 죽인 바 있소. 우리가 화평을 청해도 저들이 들어주지 않으면 어쩌오?"
"오자서와 협상하면 당연히 우리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나라 태재 백비는 재물과 여색을 좋아하고 시기하는 마음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백비(伯嚭)는 지금 오자서를 시기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환심을 사면 화평을 맺을 수도 있습니다."
"설사 백비가 우리 뜻에 동조한다 해도 오왕 부차(夫差)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질 않소?"
"만일 오왕이 들어주지 않는다면 왕께서 스스로 볼모가
되어 그를 섬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은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 월(越)나라 사직을 보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나라는 영원히 오(吳)나라에 대해 복수할 수가 없습니다."
- 왕을 인질로 내주고 나라를 보존한다.
물론 최악의 경우이겠으나 이만저만 상식을 초월한 생각이 아닐 수 없었다.
당장에 목을 베도 그만일 정도로 불충한 발언이었다.
구천(句踐)은 놀란
눈으로 범려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구천의 눈은 이렇게 질타하고 있었다.
하지만 범려(范蠡)는
조금도 위축됨이 없었다. 정면으로 구천의 눈길을 마주 받았다.
그런 그의 눈동자 또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왕의 신하가 아니라 월나라 사직의 신하입니다.'
잠시 군신(君臣)간에
강렬한 눈싸움이 이어졌다. 눈길을 먼저 피한 것은 월왕 구천이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좋소. 협상에
임하겠소."
범려(范蠡)는 스승이자
동료 대부인 문종(文種)을 불러 협상 준비를 부탁했다. 도성인 제기로 사람을 보내어 백옥 20쌍과 황금 1천 일(鎰). 그리고
미인 여덟 명을 데리고 왔다.
모든 준비가 갖춰지자 문종(文種)은 밤의 어둠을 이용하여 오나라 진영으로 갔다.
그는 은밀히 백비의 영채를 찾아갔다.
백비(伯嚭)는 잠자리에 들려다가
월나라 측에서 사자를 보내왔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어째서 이런 밤중에 나를 찾아왔을까?'
그는 수하 군사에게 물었다.
"혼자 왔더냐?"
"아닙니다. 아름다운
여자 여덟 명과 함께 많은 물건을 가지고 왔습니다."
백비(伯嚭)의 머릿속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입가에는 이내 한 가닥 미소가 떠올랐다.
'옳거니. 이는 필시
월(越)니라가 화평을 청하려는 것이로구나.'
백비의 예상은 정확한 것이었으나, 그의 입가에 서린 웃음에는
다른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는 오(吳)나라로
망명한 이후 줄곧 오자서의 그늘에 가려왔었다.
대외정책이라든지 전쟁에는 오자서가 한 수 위였다. 그는 이것이
못내 불만이었다.
- 오자서(伍子胥)만 권세를 누릴 것인가.
그는 호시탐탐 오자서를 제치고 국정을 장악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2년 전 오자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월(越)나라를 침공했던 것도 오로지 공을 세워 자신이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아쉽게도 그 전쟁에서는 참패를 당했다. 오왕 합려까지
부상 끝에 죽음에 이르렀다.
그 뒤 백비는 많이 위축되었다.
이번 월나라 정벌은 그에 대한 복수전이었다.
오자서(伍子胥)가
입안했다. 그리고 대승을 거두었다.
- 이제 마지막 공세만 취하면 월왕 구천(句踐)은 사로잡히거나 죽임을 당할 판이다.
오자서는 또 하나의 커다란 공훈을 눈앞에 두고 있는 셈이었다.
백비(伯嚭)는 시기하는 마음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 그 공을 내 것으로 할 수는 없을까.
이렇게 고민하는 중에 뜻밖에 월(越)나라 사자가 자신을 찾아온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백비는 머리를 빠르게 회전시켰다.
'좋은 기회다.'
섬광 같은 것이 스쳐갔다.
그는 자신의 주도하에 이 전쟁을 마무리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렇다. 내가 월왕
구천의 항복을 유도하면..........'
모든 공은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누가 뭐래도 이번 전쟁의 일등공신은
자기가 되는 것이다.
백비(伯嚭)는 마음을 정하자
월(越)나라 사자를 들어오게 했다.
제37장 오월(吳越) 전쟁 (8)
월(越)나라 대부
문종(文種)은 몸을 잔뜩 낮춘 채 들어와 백비(伯嚭) 앞에 무릎을 꾾었다.
그는 백비(伯嚭)의 얼굴을 보는
순간 월(越)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 눈빛이 유난히 반짝이는 사람은 이익에 밝다. 교활하기도 하지만 다루기도
쉽다.
문종(文種)은 한껏
공손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태재께서는 우리 나라를 살려주십시오."
"월(越)나라는 우리 나라 왕을 죽인 불공대천의 원수. 너는 어찌하여 나에게
네 나라를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이냐?"
백비의 언행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거만했다.
하지만 문종(文種)은
속으로 더욱 기뻐했다. 이런 자일수록 대화를 나누기가 수월한 것이다.
"우리 나라 임금 구천(句踐)은 워낙 아는 것이 없어 그간 오(吳)나라를 제대로 섬기지 못하고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우리 왕께서도 그 잘못을 뉘우치시고 오나라 충복이 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오왕께서 이를 허락하지 않으실까 두려워 먼저
공덕이 높고 오나라 간성(干城)이신 태재께 이 미천한 하신(下臣)을 보내신 것입니다. 보잘것
없으나 여기 조그만 물건을 가져왔으니 부디 태재께서는 받아주시고 우리 월(越)나라의 일을 오왕께 말씀드려주십시오."
문종(文種)은 가지고
온 미인 여덟 명과 물품 명단을 백비에게 바쳤다.
백비(伯嚭)는 자신의 예상대로
월(越)나라가 화평할 마음이 있음을 알고 더욱 기뻐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여전히 위엄있는 표정을 지으며 꾸짖었다.
"월나라가 망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그 때가면 월나라 물건이 모두 오나라 것이 될 터인데, 내 무슨
까닭으로 이런 시시한 것들을 받을 것인가? 너는 나를 너무 우습게 알았다!"
문종(文種)은 다시
입을 열었다.
"방금 태재께서 월(越)나라가 망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하셨지만, 그것은 잘못 아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월나라가 패하긴 했지만, 아직 회계산에는 5천 정병이 남아 있습니다. 장차 그들이 목숨을 걸고 귀국 군사와
싸우면 어찌 쉽게 굴복시킬 수 있겠습니까?"
"또 싸워서 질 경우에는 성안의 모든 보물을 불살라버리고
초(楚)나라로 달아날 터인데, 어찌 그것이 오나라 것이 된다고 말씀하십니까. 오(吳)나라가 여기서 더 우리를 핍박하면 우리 월나라도 망하겠지만, 오나라 또한 얻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
"그러나 반대로 이번 화평이 성립된다면 오(吳)나라는 우리 월(越)나라를 수족처럼 부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재물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또한
태재께서는 일등 공훈에 오르시게 되며 나라 일을 태재의 마음대로 지휘할 수 있게 됩니다."
"저는 맹세할 수 있습니다. 태재께서 이번 화평에 힘써만 주신다면, 저는 우리 나라로 돌아가
왕의 딸을 왕께 바칠 것이요, 대부의 딸을 대부에게 바칠 것이요, 사(士)의 딸을 사에게 바치겠습니다."
문종의 모든 말이 바로 백비가 노리는 바가 아닌가.
백비(伯嚭)는 흐뭇한 마음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그대의 왕은 정녕 우리 오(吳)나라를 섬길 마음이 되어 있는가?"
"어찌 이런 중대한 일을 미천한 하신(下臣)이 마음대로 지껄이겠습니까. 지금의
모든 약속은 우리 왕께서 친히 저에게 내리신 말입니다. 태재께서는 이번 기회를 통해 오와 월 두 나라를
모두 장악하십시오."
백비(伯嚭)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대가 오자서(伍子胥)를 찾아가지 않고 특별히 나를 찾아온 것은 내가 월(越)나라를 해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내 어찌
그런 그대의 마음을 저버릴 수 있을 것인가. 내일 날이 밝으면 마땅히 그대를 데리고 왕께 가 화평을
주선하리라."
백비(伯嚭)는 문종이 가져온
보화와 미인들을 자기 군막에 숨기고 그를 자기 영중에 머물게 했다.
다음날이었다.
백비(伯嚭)는 문종과 함께
오왕 부차에게 가 월나라가 화평할 의사가 있음을 아뢰었다.
지난 2년간 한시도 부왕 합려의 죽음을 잊은 적이 없는 부차(夫差)는 백비의 말을 듣자마자 눈꼬리부터 치켜올렸다.
"월(越)나라는 나의 철천지원수다. 내 어찌 원수와 화평을 맺을 것인가!"
그러나 이미 백비(伯嚭)는 부차를 설득할 말을 준비해왔다.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가 아뢰기 시작했다.
"왕께서는 지난날 손무(孫武)가 한 말을 기억하십니까. '군사는
흉기(凶器)이니 잠깐 쓸 뿐 오래 써서는 안 된다.' 월나라가 비록 우리에게 큰 죄를 지었으나, 이제 화평을 청하기
위해 신하를 보내왔습니다.
그의 말을 들어본즉, 월(越)나라는 앞으로 몸종처럼 우리를 섬길 것이요, 왕의 딸은 왕에게, 대부의 딸은 대부에게, 사(士)의 딸은 사에게 바칠 것이라 합니다."
"월(越)나라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 종묘를 받들게 해달라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만일 왕께서 월나라를 용서하지 않으신다면, 구천(句踐)은 종묘를 불태우고 처자를 죽이고 금과 옥을 강물에 던져버린
후 정병 5천 군사와 더불어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죽을 때까지 우리와 싸울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 군사도 많은 희생을 해야 합니다. 얻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왕께서는 저들을 모두 죽이는 것과 월(越)나라의 땅과 재물과 여자를 얻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교묘한 언변이었다.
부차(夫差)는 대답할
말을 잃었다. 아니, 속으로는 백비가 나서서 득이 많은 화평을
주선하고 있는 것이 고맙기까지 했다.
그는 처음의 기세와는 달리 누그러진 음성으로 물었다.
"월(越)나라 사신은 지금 어디 있는가?"
"군막 밖에서 왕의 분부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들어오라 이르라."
이때 월나라 대부 문종(文種)이
군막 안으로 들어오는 광경을 사마천은 <사기>를
통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 문종(文種), 무릎 걸음으로 들어가 머리를 조아리다.
짧지만 상당히 강렬한 대목이다.
군막이라고 했지만 왕이 거처하는 곳이니만큼 상당히 길고 넓었을 것이다. 그
긴 거리를 시종 무릎 걸음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군막 안은 숨막힐 듯 조용했다.
- 이전글[列國誌] 2부 장강의 영웅들 (289) 제37장 오월(吳越) 전쟁 (9) 23.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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