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2부 장강의 영웅들 (289) 제37장 오월(吳越) 전쟁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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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장 오월(吳越) 전쟁 (9)
월(越)나라 대부
문종(文種)의 무릎이 한 걸음 한 걸음 옮겨질 때마다 피가
배어나왔다.
부차도 백비도 그 밖의 신료들도 그 핏자국을 보았다.
이윽고 문종(文種)이
부차 앞에 서서 머리를 조아렸다.
부차(夫差)가 그를
향해 물었다.
"그대 임금 부부가 다 우리 오나라 신첩(臣妾)이 되겠다고 했다지?"
백비(伯嚭)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물론 문종(文種)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구천의 딸을 바치겠다는 말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 부차(夫差)의 입에서는 엉뚱하게도 구천 부부 운운하는 말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문종(文種)은 주춤했으나
이내 부차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아, 왕과 왕의
부인을 인질로 삼겠다는 뜻이로구나.'
그가 여기 오기 전 범려가 예상했던 최악의 경우가 현실로 닥친 것이었다.
문종(文種)은 망설였다.
어찌 대답할 것인가. 상황으로 보건대 월왕 구천을 인질로 내놓지
않는 한 부차(夫差)는 협상에 응할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 범려의
말대로 나는 왕의 신하가 아니라 월(越)나라의 신하다.'
문종(文種)은 마음을
굳히고 다시 한 번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우리
왕께서는 오왕의 신하가 되고 그 처는 첩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왕의 뜻에 달렸으니, 오로지 종묘사직만이라도 보존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여기에 태재 백비(伯嚭)가 거들었다.
"구천(句踐) 부부는 우리 오나라로 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월나라를
통합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보다 더 큰 이득이 어디 있습니까?"
순간 오왕 부차(夫差)는
결심했다.
가슴이 뿌듯했다. 마침내 부왕 합려의 원수를 갚고 월나라를 오나라에
통합시킨 것이었다. 그는 우렁찬 목소리로 문종을 향해 한마디 던졌다.
"그대는 돌아가라. 가서
월왕에게 전하라. 전쟁은 끝났다고!"
그때 오자서(伍子胥)는
자신의 막사 안에 있었다.
심복 장수 하나가 급하게 들어오며 보고했다.
"지금 월(越)나라 사자가 왕을 알현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화평을 청하러 온 모양입니다."
오자서(伍子胥)는
대경실색했다.
이제 군사를 휘몰아 회계산으로 진격하면 영원히 월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는데 화평이라니!
그는 혹시나 하여 부랴부랴 부차의 군막으로 달려갔다.
과연 군막 안에는 월나라 사자 문종(文種)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표정으로 보아 이미 협상을 마친 후인
것 같았다.
오자서(伍子胥)는
예를 올리는 것도 잊고 외쳐 물었다.
"왕께서는 월나라와 화평할 것을 허락하셨습니까?"
"그렇소. 허락했소."
오자서가 부르짖었다.
"안 됩니다. 화평을
맺어서는 안 됩니다."
이 같은 외침 소리에 놀란 것은 월나라 대부 문종이었다. 그의
얼굴은 삽시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오자서(伍子胥)가 다 된 밥에 재를 뿌리지나 않을까 두려워서였다.
오자서는 계속해서 험악한 어조로 간언을 올리고 있었다.
"바야흐로 하늘이 월(越)나라를 우리 오(吳)나라에게
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화평이라니요? 세 줄기의 강물(전당강, 오송강, 부춘강)이 오와 월을 둘러싸고 있어 이 곳 백성들은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으며, 오(吳)가 있으면 월이
있을 수 없고, 월이 있으면 오가 있을 수 없습니다."
"무릇 우리가 북쪽 중원 땅을 쳐서 이긴다 해도 우리는
그 곳에서 살 수 없고 그들의 수레도 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월(越)나라는 우리가 쳐서 이기면 곧바로 그 땅에서 살 수 있으며 그들의 배도 탈 수 있습니다."
"생사를 판가름하는 이런 중대한 시기에 어찌 그런 이익을
버리려 하십니까? 더욱이 월(越)나라는 선왕을 죽인 원수입니다. 오(吳)나라와 월(越)나라는 한
배를 탈 수 없는 처지입니다. 왕께선 선왕의 유언을 잊으셨습니까?"
오자서의 거센 반발에 오왕 부차(夫差)는 당황했다.
뭐라 대답할지 몰라 눈만 껌벅이는데 태재 백비(伯嚭)가 앞으로 나서서 아뢰었다.
"재상은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저 군사를 일으키는 것은 복종을 위해서입니다. 상대가 잘못을 뉘우치고
굴복하는데, 그것을 치는 것은 예(禮)가 아닙니다.
지난날도 우리 오(吳)나라는
월나라와 수로(水路)로 의(誼)를 맺고 진(晉)나라와는
육로로써 의를 맺은 바 있습니다."
"만일 오자서재상의 말처럼 오월이 동주(同舟)할 수 없다면 육로로 인접해 있는 진(晉), 진(秦), 제(齊), 노(魯) 여러 나라는 진작에 한 나라로 통합되었어야 할 것입니다. 어찌 오월동주(吳越同舟)는
안 되고 제노(齊魯) 동행은 된다는 말입니까."
"또 오자서(伍子胥)는 선왕의 원수이기 때문에 월(越)나라를
용서할 수 없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오자서는 자신의 원수국인 초나라와는 어찌하여 화평을 맺었습니까? 더욱이 그때의 화평조건이란 고작 공자 승(勝)을 돌려보낸 데 불과했습니다."
"지금 월(越)나라는 왕이 우리 나라로 들어와 종복이 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만
비교해도 어느 것이 유리합니까.
지금 오자서(伍子胥)는
충성을 빙자하여 반대하고 있습니다만, 결국 나중에는 왕에게 잔인하다는 평만 남겨줄 것입니다. 진실로 오(吳)나라를
위하는 사람이라면 월(越)나라와의 화평에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절묘한 논리였다. 오왕 부차(夫差)는 얼굴에 흐뭇한 미소를 띠었다.
"태재의 말이 이치에 합당하오. 재상은 이번 일에 관여하지 마시오. 과인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오."
오자서(伍子胥)는
기가 막혔다.
탄식과 분노의 불길이 가슴속에서 활활 타올랐다.
'지난날 내가 피이(被離)의 말을 듣지 않고 백비를 천거했는데, 아아 그가 비무극보다 더한
간신일 줄이야.'
오자서(伍子胥)는
탄식에 탄식을 거듭하며 막부를 나왔다.
마침 대부 왕손웅(王孫雄)이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오자서는 자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누를 길이 없어 그에게 말했다.
"월(越)나라는 앞으로 10년이면 회복할 것이요. 다시 10년이면 크게 일어날 것이오. 그러므로 20년 안에 우리 오(吳)나라 궁성은 큰 못으로 변하고 말 것이오."
이를테면 예언이었으나 왕손웅(王孫雄)이 그 말뜻을 알아들을 리 없었다.
반면, 군막 안에 남아 있는 백비(伯嚭)는 속으로 승리의 환호를 지르고 있었다.
'오자서(王孫雄)를 꺾었다. 이제 앞으로는 나의 시대다!'
부차(夫差)는 부차대로
자신의 위엄과 성덕을 펼친 것 같아 흐뭇한 마음이 되었다.
월나라 대부 문종에게 화평 조약에 관한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
- 그대는 돌아가서 화평이 성립되었다는 것을 월왕(越王)에게 말하고 친히 나의 앞에 와서 무릎을 꿇도록 하라.
며칠 후, 회계산 기슭에 높은 단이 세워졌다.
오나라와 월나라가 화평조약을 맹세할 제단이었다.
그러나 이때의 제단은 여느 회맹 때의 것과 많이 달랐다. 대등한
조건에서의 협정이 아니라 월(越)나라가 오(吳)나라를 섬기겠다는 항복 맹세인 것이다.
오왕 부차(夫差)는
높은 단 위에 앉았다.
월왕 구천(句踐)은
단 밑에 무릎을 꿇었다. 구천은 몸을 일으켜 계단을 올라가 친히 항복 문서를 부차에게 바쳤다.
부차(夫差)는 흡족헸다. 타이르듯 구천에게 말했다.
"일찍이 나는 월나라의 모든 신료를 살육하여 부왕의
원수를 갚으리라 결심했었다. 그러나 그대의 신세가 너무 가련하여 차마 죽일 수가 없구나. 이제 월(越)나라는 나의
영토가 되었다. 그대는 지난 죄를 깨닫고 신하의 신분으로서 충성을 다하도록 하라."
구천(句踐)이 허리를
숙이며 대답한다.
"대왕의 크신 은덕으로 목숨을 보존하였으니 어찌 그
은혜에 보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은 이제부터 평생토록 대왕을 모시며 함께 고락을 누리겠습니다."
이른바 '회계산의 치욕'이었다.
월왕 구천(句踐)은
마음속으로 이 수모와 굴욕과 울분을 잊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웃음을 머금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다만 대왕께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신은 이미 대왕의 신하가 되었으므로 마땅히 지금 당장
대왕을 따라 오(吳)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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