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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國誌] 2부 장강의 영웅들 (298) 제38장 구천의 와신상담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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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9회 작성일 23-02-19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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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장 구천의 와신상담 (7)

 

어느 날, 오왕 부차(夫差)가 태재 백비를 불러 말했다.

"이제 사방이 안정되고 나라가 태평하니 과인은 큰 궁궐을 짓고 편히 즐기고자 하오. 놀기 좋은 궁궐을 지을 만한 곳이 없을까?"

백비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신이 살펴보건대 우리 오나라에는 풍광이 좋기로 고소산(姑蘇山)만한 곳이 없습니다. 고소산에는 이미 부왕인 합려께서 궁궐을 지은 바 있습니다만, 규모가 너무 작아 왕께서 즐기실 만한 곳이 못 됩니다. 이번 기회에 예전의 고소산 궁궐을 헐어버리시고 그 터에 새로이 커다란 고소대(姑蘇臺)를 지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좋도다. 내 고소산에다 1백 리를 바라볼 수 있는 높이에 6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고소대(姑蘇臺)를 지어 인간 세상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리라!"

얼마 후, ()나라 전역에는 고소대를 짓기 위한 큰 목재를 구한다는 현상이 나붙었다.

이 소식은 월()나라 신하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월나라에는 재상 범려 외에 또 한 명의 모신(謨臣)이 있었다. 다름 아닌 내정 담당관 문종(文種)이었다.

- 높이 나는 새는 맛있는 과일을 탐하다 죽게 마련이고, 깊은 못 속에 사는 고기는 좋은 미끼를 욕심내다가 죽는 법이다. 내 어찌 이런 기회를 놓칠 것인가.

그는 오나라를 망칠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범려와 의논한 후 함께 월왕 구천을 찾아가 아뢰었다.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오()나라에 대해 원수를 갚아야 합니다. 이번에 오왕 부차(夫差)가 고소산에 커다란 궁궐을 짓는다고 하니, 왕께서는 그들이 좋아할 물품을 보내시어 오왕의 목숨을 취하도록 하십시오."

구천(句踐)이 물었다.

"우리가 목재를 보내는 것과 부차의 목을 취하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소?"

"신은 그동안 오()나라에 대해 원수를 갚기 위해 일곱 가지 방법을 강구해두었습니다."

문종(文種)은 그 방법을 구천에게 조목조목 설명해주었다.

첫째, 재물을 보내어 오()나라 임금과 신하들을 기쁘게 해준다. 이는 그들을 방심케 하는 것이다.

둘째, 수시로 오()나라에 곡식을 꾸어달라고 요청한다. 이것은 그들의 창고를 비게 하는 것이다.

셋째, 아름다운 미인을 보내어 오나라에 바친다. 이는 부차의 마음을 흐리게 하기 위함이다.

넷째, 훌륭한 목공과 목재를 보내어 화려한 궁궐을 짓게 한다. 이는 오()나라 재물을 탕진케 하기 위함이다.

다섯째, 지혜 있는 신하를 오나라로 파견한다. 이것은 오나라에 난()이 일어나게 하기 위함이다.

여섯째, 오나라의 충신들을 궁지에 몰아넣어 은퇴시키거나 자살하도록 한다. 이는 부차(夫差) 주위에서 인재를 제거하기 위함이다.

일곱째, 그 사이 월()나라는 재물을 저축하고 군사를 조련한다. 이는 대군을 몰아 오()나라로 쳐들어가기 위함이다.

"이미 우리는 첫번째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침 부차(夫差)가 고소산에다 궁궐을 지을 마음이 있다고 하니 이제 바야흐로 넷째 방법을 쓸 때입니다. 우리가 좋은 목재를 구해 오나라에 바치면 부차는 궁궐 짓는일에 박차를 가할 것이요, 그러면 그만큼 그들의 재물은 일찍 바닥날 것입니다. 왕께서는 주저치 마시고 궁궐 짓는데 맞춤한 목재를 구해 오()나라로 보내십시오."

"좋도다, 그대의 말이여. 오나라에 원수를 갚기 위해서라면 내 무엇을 주저하고 아까워하리오."

구천(句踐)은 곧 목공 30명을 골라 남쪽 울창한 산으로 들여보냈다.

목공들이 산 속을 뒤질 때 문득 눈앞에 커다란 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두 나무 모두 둘레가 20 아름이 넘었고, 높이는 50길에 달했다.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선 것은 노()나무였고, 그늘진 곳에 선 것은 남()나무였다.

목공들조차 그렇게 큰 나무는 처음 보았다.

그들은 구천에게 가서 그 사실을 보고했다. 구천(句踐)이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하늘이 우리 월()나라를 위해 신목(神木)을 보내주셨구나."

그러고는 친히 그 산으로 가 두 나무에게 제사를 지낸 후 목공들을 시켜 베게 했다. 목공들은 나무를 깨끗이 다듬고 손질했다. 그런 후에 오색이 영롱한 용과 봉황을 그려넣었다.

문종(文種)은 큰 배에 그 목재를 싣고 강을 건너 오성으로 들어갔다.

"동해의 천신(賤臣) 구천이 우연히 큰 목재를 얻었습니다. 감히 우리가 쓸 수 없어 대왕께 바칩니다."

부차(夫差)는 문종이 가지고 온 목재를 보고 입이 크게 벌어졌다.

이 소식을 들은 오자서(伍子胥)가 황급히 달려와 간했다.

"옛날 걸왕은 영대(靈臺)를 짓고 주왕은 녹대(鹿臺)를 지었다가 결국 재물만 탕진하고 나라를 잃었습니다. 구천이 이런 목재를 보낸것은 우리 오나라를 해치려는 수작입니다. 받지말고 돌려보내십시오."

부차(夫差)는 자신의 흥취를 깨는 오자서가 미웠다.

"구천(句踐)은 자신이 이 목재를 사용할 수도 있건만 일부러 과인에게 보냈소. 어찌 그 호의를 물리칠 수 있단 말인가?"

부차는 오자서가 보는 앞에서 태재 백비를 불러 고소산에다 고소대(姑蘇臺)를 지으라 명했다.

공사가 시작되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공사였다. ()나라에서 바친 두 개의 목재에 걸맞는 궁궐을 짓느라 애초 계획했던 것보다 더 커진것이었다.

고소대(姑蘇臺) 공사는 무려 5년이 걸렸다.

높이가 3백 장()이요, 넓이가 84()이었다.

1() 10척이요, 당시의 1척은 약 23cm이니 3백 장이라면 700m에 가까운 높이였다. 물론 여기에는 다소 과장도 섞여 있으리라.

이 거대한 공사를 마치기 위해 오()나라 백성들은 밤낮 없이 중노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죽고 부상당한 자가 수천 명에 이르렀고, 그 원망은 하늘에 닿을 듯했다.

38장 구천의 와신상담 (8)

 

월왕 구천(句踐)은 고소대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월나라의 양대 동량(棟樑)이라 할 수 있는 범려와 문종을 불러들였다.

"이제 일곱 가지 계책 중 첫째와 넷째를 실행에 옮겼소. 다음은 어떤 계책을 쓰는 것이 좋겠소?"

이번에는 범려(范蠡)가 안을 내었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게 마련입니다. 오왕 부차(夫差)가 고소대를 지었다는 것은 곧 놀기를 좋아한다는 뜻입니다.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찌 미인을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바야흐로 미인계(美人計)를 쓸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여러 차례 미인들을 부차에게로 보내지 않았소? 새삼스레 미인계라니, 그 뜻을 잘 알 수 없구려."

"지금까지 보낸 여인들로는 미인계라 할 수 없겠지요. 옛날 유시씨(有施氏)는 걸왕에게 말희()를 보내 하왕조를 종식시켰고, 유소씨(有蘇氏)는 달기(妲己)를 주왕에게 보내 은왕조를 멸망시켰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보낼 미인은 바로 이 정도의 미색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런 여인을 어찌 쉽게 구할 수 있으리오?"

"우리 월()나라는 예부터 색향(色鄕)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미인이 많습니다. 왕께서는 신에게 동자(童子) 1백 명을 내주십시오."

"그러면 신은 관상 잘 보는 자 1백 명을 뽑아 그 동자들과 조를 이루어 두루 국내를 돌아다니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발견된 미인들을 대상으로 신이 직접 확인하면 어찌 경국지색(傾國之色)을 찾아내지 못하겠습니까?"

"좋고 좋도다!"

이때부터 월()나라 각지에서는 미인 뽑는 일로 부산했다.

반 년쯤 지나자 동자와 관상가로 구성된 1백 조의 채홍사(採紅使)로부터 보고서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모두 2천 명의 미인이 추천되었다.

이 일을 관장하는 범려(范蠡)는 한 치의 소홀함도 없기 위해 자신이 직접 내려가 추천된 미인들을 일일이 확인했다. 그리하여 다시 50명을 선발하고, 그 중에서 또 고르고 골라 마침내 두 명의 미인을 뽑았다.

- 서시(西施)와 정단(鄭旦).

범려가 최종적으로 낙점한 여인들의 이름이었다.

서시(西施)는 저라산 아래에 사는 어느 초부(樵夫)의 딸이었다.

저라산은 지금의 절강성 저파시 근처에 있는 산이다. 회계성에서 동쪽으로 2백여 리 떨어져 있는 곳이다. 원래 저라산 밑에는 동촌(東村)과 서촌(西村)이라는 두 마을이 있었다. 그 곳은 시씨(施氏)의 집성촌이었다.

최종적으로 뽑힌 두 여인은 공교롭게도 둘 다 서촌 태생이었다.

한 여인은 서촌(西村) 토박이이고, 다른 한 여인은 외지를 떠돌다가 그 곳에 정착한 사람의 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토박이 여인을 서시(西施)라고 불렀고, 다른 한 여인을 정단(鄭旦)이라 하였다. 서시란 서촌에 사는 시씨(施氏)라는 뜻이요, 정단이란 정나라에서 온 단씨(旦氏)라는 뜻이다.

서시(西施)와 정단(鄭旦)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자색을 갖추고 있었다. 더욱이 그녀들은 구용강(句勇江)가의 이웃에 살았다. 두 여인은 매일 함께 강가로 나가 빨래를 했다. 맑은 강물에 비친 두 여자의 아름다운 얼굴은 마치 한 쌍의 부용(芙蓉) 같았다.

범려(范蠡)는 구용강가에서 빨래하는 두 여인을 보고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망설임 없이 두 여인을 데리고 회계성으로 돌아왔다. 이 소문이 백성들 사이에 퍼졌다.

사람들은 월()나라 최고의 미인을 구경하기 위해 만사 제쳐놓고 모여들었다. 그 바람에 범려와 두 여인이 탄 수레는 길이 막혀 성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때 범려(范蠡)는 한 가지 꾀를 내었다.

'두 여인의 미모도 확인하고 국고(國庫)도 충당하자.'

범려는 서시(西施)와 정단(鄭旦)을 교외 별관으로 데리고 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렸다.

- 미인을 보고자 원하는 사람은 이 궤에다 금전 1()씩 넣되, 만일 미인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도로 가져가라.

백성들은 앞다투어 궤 속에다 돈을 넣었다.

눈 깜짝할 사이 커다란 궤가 가득 찼다. 잠시 후 범려는 서시(西施)와 정단(鄭旦)을 데리고 누대 위로 올랐다. 두 여인은 난간에 기대어 구름처럼 모여 있는 사람들을 굽어보았다.

"..............!"

서시(西施)와 정단(鄭旦)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탄성조차 내지르는 것을 잊었다. 그들의 눈에 두 여인은 지상 사람이 아니라 천상의 선녀가 하강한 것처럼 보였다. 두 여인의 모습이 난간에서 사라졌는데도 사람들은 흩어질 줄 몰랐다. 아무도 돈을 도로 가져가는 사람은 없었다.

범려(范蠡)는 이렇게 사흘간을 교외 별관에서 머물렀다.

그 사이 모인 돈이 한 고을에서 거두어들인 세금과 맞먹을 정도였다. 범려는 그 돈을 국고에 바치고 나서 새삼 탄식했다.

- 여인의 아름다움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로구나. 지난날 한 왕조가 멸망할 때마다 그 뒤에 미인이 있었던 것도 우연이 아니로구나.

범려(范蠡)는 자신의 집 뒤편에 작은 누각을 짓고 두 여인을 그 곳에 머물게 했다. 그러고는 늙은 학사들을 초빙해 노래와 춤과 화장하는 법과 걸음걸이법 등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방중술(房中術)까지 가르쳤다.

그는 서시(西施)와 정단(鄭旦)에게 오왕 부차의 정신을 빼놓을 모든 재주와 기술을 습득시킬 작정이었던 것이다.

BC 489(월왕 구천 8), 구천이 오나라에 풀려난 지 3년째 되는 해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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