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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권 오월춘추 제39장 미인 서시(西施)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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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7회 작성일 23-02-19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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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장 미인 서시(西施) (5)

 

월왕 구천의 와신상담(臥薪嘗膽)은 계속되고 있었다.

서시(西施)와 정단(鄭旦) 역시 범려의 집에 머물며 3년 동안 노래와 춤과 온갖 재주를 배우고 있었다. 그녀들이 주렴을 두리운 비단 수레를 타고 거리로 나가면 온 성안에 향기가 가득 차는 듯했다.

마침내 범려(范蠡)는 서시와 정단을 궁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월왕 구천에게 선보이기 위해서였다.

".....................!"

구천(句踐)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할말을 잃었다.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어찌 이렇게 고운 여인들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구천(句踐)은 첫눈에 서시와 정단에게 반했다.

'아깝도다.'

그의 가슴속에는 자신이 두 미인을 데리고 살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렸다. 원수인 부차에게 내주기가 아까웠다.

하지만 범려(范蠡)는 냉정했다.

그는 구천의 마음을 짐작한 듯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나라가 멸망하는 날 왕께서는 이 같은 미인을 백 명, 천 명 데리고 살 수 있습니다."

구천(句踐)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얼른 변명을 했다.

"과인이 어찌 지난날의 치욕을 잊을 리 있겠소? 이번 미인계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오."

그러고는 궁중 여인인 선파(旋波), 이광(移光) 등 여섯 여인을 서시와 정단의 몸종으로 붙여주었다.

BC 485(월왕 구천 12) 5.

월나라 재상 범려(范蠡)는 서시와 정단을 데리고 오나라로 건너갔다.

오나라 궁궐로 든 범려는 부차에게 절을 올린 후 월왕 구천의 말을 전했다.

"동해의 천신(賤臣) 구천은 먼저 제나라를 정벌하고 돌아오신 왕의 노고를 치하드립니다. 신은 늘 태산과 같은 성은을 입으면서도 직접 왕을 모시지 못하는것이 한()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미인 둘을 뽑아 왕께 보내오니 곁에 두시고 부리시기 바랍니다."

부차(夫差)는 전에도 월나라로부터 여러 미인들을 받아온 터였기에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범려(范蠡)가 불러들인 두 여인을 보는 순간 그는 이미 예전의 부차가 아니었다.

눈빛부터가 달라졌다.

"..................!"

지금까지 이토록 아름다운 여인을 본 적이 있을까.

서시(西施)와 정단(鄭旦)의 모습은 천상의 선녀 한 쌍이 하강한 듯했다. 그는 정신이 몽롱해지는 자신을 느꼈다. 자리에 제대로 앉아 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마침 그 자리에는 오자서도 있었다.

그는 서시(西施)와 정단(鄭旦)을 보는 순간 직감적으로 월나라가 미인계를 쓰고 있음을 알아챘다.

재빨리 일어나 간()했다.

"왕께서는 두 여인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신이 듣건대 사치는 천화(千禍)의 근원이요, 음란은 만재(萬災)의 근원이라 하였습니다. 구천이 왕에게 두 미인을 바치는 것은 왕의 마음을 어지럽히려는 수작입니다. 당장 월()나라로 돌려보내십시오."

오자서의 말에 범려(范蠡)는 등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

여차하면 몇 년 동안 공들였던 계책이 무너질 판이었다.

그때 부차(夫差)가 오자서에게 대답했다.

"영웅은 호색이오. 미인을 좋아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진인데, 구천(句踐)이 저런 미인을 자기 곁에 두지 않고 나에게 바쳤으니 그 충성을 가히 짐작할 수 있소. 재상은 공연히 남을 의심하지 마오."

범려를 의식해서인지 한껏 부드러운 어조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 불쾌한 기색이 숨겨져 있음을 범려(范蠡)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가늘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 날부터 오왕 부차(夫差)는 서시(西施)와 정단(鄭旦)를 한시도 곁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두 여인 모두 빼어났으나 요염하고 비위를 잘 맞추기는 정단보다 서시가 월등했다. 차츰 서시(西施)가 부차의 곁을 차지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지만 어찌 알았으랴.

그녀는 단순한 미인이 아니었다.

범려가 철저하게 훈련시킨 간자(間者)였다.

그녀는 자신의 임무를 잊지 않았다.

어느 날, 서시(西施)가 부차에게 속삭였다.

"듣자하니 왕께서는 고소산에 아름다운 궁궐을 짓는다고 하였는데, 신첩은 언제쯤 그 궁궐을 구경할 수 있을는지요?"

그 무렵 고소대(姑蘇臺) 공사는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죽고 상하는 인부가 많아 공사가 조금씩 지연되고 있었다.

부차(夫差)는 눈에 집어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귀여운 서시(西施)가 고소대를 보고 싶어하자 태재 백비를 불러 명했다.

"고소대 공사가 어찌 늦어지는가. 회계산에 주둔시켜 놓은 왕손웅(王孫雄)의 군사 3천 명을 불러들여 고소대 짓는 일에 투입하라!"

부차(夫差)는 월나라가 반란을 일으킬까 염려하여 회계산에다 군사 3천 명을 주둔시켜 놓은 바 있었다. 그런데 서시(西施)가 고소대를 빨리 보고 싶어하자 그 군대를 거두어들여 노역부로 대용하게 한 것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오자서(伍子胥)는 기절초풍할 듯 놀랐다.

비분과 울화가 극도에 달했다.

그는 그 길로 궁으로 달려가 피를 토하듯 간언했다.

"어떻게 국경 수비의 군사를 노역부로 쓸 수가 있습니까? 무릇 군대란 나라를 지키는 간성(干城)입니다. 한시도 태만해서는 안 되는 터에 오히려 그들을 노역으로 전용하시니 이는 진실로 스스로 오()나라를 멸하는 짓일 뿐입니다."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구천(句踐)이 서시와 정단을 보낸 것은 왕을 음란의 세계로 빠뜨리려는 수작입니다. 왕께서 서시와 정단을 옆에 끼고 향략에 빠져 계실 때 구천은 월나라를 강하게 키우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속히 고소대(姑蘇臺) 공사를 중지하시고, 서시(西施)와 정단(鄭旦)을 구천에게로 돌려보내십시오."

하지만 부차(夫差)는 이미 오자서에게서 마음이 떠나 있었다.

오자서의 말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고 태재 백비에게 명했다.

"한 달 이내에 고소대 공사를 마무리지으라."

오자서(伍子胥)는 통분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39장 미인 서시(西施) (6)

 

군사들이 대거 공사에 투입되면서 고소대 공사는 빠르게 진척되었다.

한 달 가량이 지나자 고소대가 완공되었다.

고소대(姑蘇臺)는 과연 장관이었다.

꼭대기에 올라가면 사방 2백 리가 한눈에 들어왔고, 궁궐 대청에는 6천 명의 궁녀가 한꺼번에 춤을 출 수가 있었다. 대들보와 기둥에는 교룡(蛟龍)과 봉황(鳳凰)이 아로새겨졌고, 난간에는 옥이 장식되었다. 넓은 정원에는 기화요초가 만발했으며, 동산에는 온갖 짐승들이 마음대로 뛰어놀았다.

"이 곳이야말로 별천지입니다."

부차(夫差)는 서시가 만족해하자 무척 기뻤다.

이때부터 부차와 서시(西施)는 궁에 머무는 시간보다 고소대로 나가 음악과 술과 춤을 즐기는 시간이 많아졌다.

부차가 가는 곳에는 서시가 있었고, 서시가 거니는 곁에는 언제나 부차의 모습이 보였다.

반면 정단(鄭旦)은 어느새 고립되었다.

그녀는 원래 서시와 가까운 사이였으나 오()나라로 건너온 후부터 경쟁 심리가 발동했다. 그런데 서시(西施)가 부차를 독차지하고 자신은 외톨이가 되자 마음이 몹시 울적했다.

마침내 그녀는 시기하는 마음이 지나쳐 병이 났고, 결국은 반 년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부차(夫差)는 그녀의 죽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서시(西施)를 아꼈다.

그렇다면 정단(鄭旦)도 상당한 미인이었을 터인데 부차(夫差)는 어찌하여 정단을 제쳐두고 서시만을 총애했을까?

아마도 서시에게는 서시 자신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지 않았을까.

여담으로 서시(西施)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서시의 아름다움에 파생된 대표적인 단어로 '효빈(效顰)'이라는 말이 있다.

() '모방하다'라는 뜻이요, ()이란 '찡그리다' 라는 뜻이다.

'찡그리는 것을 흉내내다'라는 말이다.

이 말은 <장자(莊子)> <천운(天運)> 편에 나오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온다.

앞서도 얘기했듯 서시(西施)는 월나라 동쪽 저라산 아래에 사는 초부의 딸이었다. 무척 가난했을 것이다. 얼굴은 아름다웠지만 위에 병이 있었던 모양이다. 통증이 올 때면 가슴에 손을 얹고 눈썹을 찡그리는 버릇이 생겼다.

그런데 그 눈썹 찡그리는 모습이 오히려 서시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침어낙안(沈魚落雁)'이라는 말이 있다.

헤엄치던 물고기가 부끄러워 물속 깊이 숨고, 날아가던 기러기가 땅으로 떨어질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의 용모를 이르는 말이다.

마을 젊은이들은 물론 여인네들까지 서시의 묘한 아름다움에 매혹되었다. 마침내 저라산 서촌 마을의 여인들은 서시(西施)처럼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눈썹을 찡그리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나 눈썹을 찡그린다고 해서 어찌 추한 여인이 아름다워질 수 있겠는가.

못생긴 여인들마저 눈썹을 찡그리고 다니자 마을 남자들은 더 이상 그 꼴을 보기가 괴로워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가버렸다. 이사 가지 않은 남자들은 눈썹을 찡그리고 다니는 여인들을 보지 않기 위해 대문을 잠그고 일절 나다니지 않았다.

'효빈(效顰)'이라는 말은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요즘도 '분수도 모르고 남을 함부로 흉내내는 사람' 을 빗대어 이 말을 쓰고 있다.

서시(西施)가 정단을 제치고 부차의 사랑을 독차지 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눈썹 찡그림'의 매력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눈썹을 찡그렸음에도 불구하고 부차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정도로 서시의 아름다움이 압도적으로 빼어났던가.

어쨌거나 부차(夫差)는 서시에게 빠졌고, 그녀를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행했다.

서시(西施)는 영암산 일대의 풍광을 좋아했다.

그래서 부차(夫差)는 서시를 위해 영암산 한쪽 기슭에 관왜궁(館娃宮)이라는 별궁을 지었다.

'미인이 머무는 궁' 이라는 뜻이다.

관왜궁(館娃宮) 주변으로는 구리 도랑을 만들어 언제나 맑은 물이 흐르도록 했으며, 옥돌을 깎아 난간을 만들었다.

부차(夫差)는 또 서시를 즐겁게 하기 위해 향섭랑()이라는 복도를 만들었다. () '진동하다' 라는 뜻이요, ()이란 나무로 만든 신발을 말한다.

그러므로 '향섭랑()' 이란 땅을 파서 큰 독을 묻어놓고 그 위에 두꺼운 판자를 깐 복도다. 나무로 만든 신발을 신고 그 위를 걸을 때면 부드럽고 아늑한 음향이 은은히 울려퍼졌다.

그 뒤 중국의 역대 황제들은 자객의 침입을 미리 알기 위해 침전과 내궁마다 향섭랑()을 설치했는데, 이것은 오왕 부차에 의해 처음 고안된 것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다.

서시동(西施洞)이라는 아늑한 동굴도 만들었다.

부차(夫差)와 서시는 종종 그 동굴 속에 들어가 놀았다. 오늘날도 그 동굴 밖에 약간 움푹 패인 바위가 하나 있는데, 서시(西施)가 앉았던 자리라고 한다.

또 완화지(翫花池), 완월지(翫月池)라는 두 연못을 파고 벽천정(碧泉井)이라는 샘물도 팠다. 서시는 때때로 그 샘물에 가서 자신의 모습을 비추며 화장을 했다. 그때마다 부차(夫差)는 옆에 서서 서시가 화장하는 것을 도왔다.

그리고 부차(夫差)는 향산(香山)이라는 석가산(石假山)을 만들고 거기에 향나무를 가득 심었다.

향산 아래로 커다란 연못과 작은 계곡을 만들어 물이 흐르게 했다.

향수계(香水溪).

서시(西施)는 배를 타고 노닐며 향나무 열매를 따곤 했다.

향수계 바닥에는 옥 같은 자개돌을 깔았다. 그 곳에서 서시는 자주 헤엄치며 놀았다. 자개돌이 비치는 맑은 향수계(香水溪)에서 헤엄치는 서시의 모습은 한 마리 은어 같았다.

성 동남쪽에 채련경(採蓮逕)이란 곳이 있다.

그 곳은 부차와 서시가 함께 연()을 따던 곳이다.

또 성안 남쪽에서 북쪽으로 큰 호수가 있었다.

그 호수에서 부차(夫差)는 서시와 함께 비단 돛의 배를 타고 놀았다.

그래서 그 호수를 금범경(錦帆逕)이라고 했다.

성의 남쪽엔 장주원(長州苑)이란 곳이 있다. 오왕 부차와 서시가 사냥하던 곳이다. 어성(魚城)에선 고기를 기르고 압성(鴨城)에선 오리를 길렀으며, 계파(鷄坡)에선 닭을 치고, 주성(酒城)에선 술을 만들었다.

오늘날도 소주(蘇州) 땅에 가면 여러 절경과 명소터가 남아 있다.

사람들은 이 명소를 '소주팔경(蘇州八景)'이라고 부르고 있다.

서시(西施)가 거처하던 관왜궁을 비롯하여 고소대, 백화주, 향수계, 서시동, 완화지, 채련경, 벽천정 등이 바로 그곳이다.

이 모두가 부차와 서시가 노닐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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