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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권 오월춘추 제39장 미인 서시(西施)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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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0회 작성일 23-02-1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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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장 미인 서시(西施) (7)

 

오왕 부차(夫差)의 이런 향락과 서시에 대한 총애는 세작을 통해 고스란히 월왕 구천의 귀에 들어갔다.

구천(句踐)은 다시 범려와 문종을 불러 다음 계책을 의논했다.

"그 동안 우리는 재물을 보내어 부차(夫差)의 의심을 덜었고, 목재를 보내어 고소대(姑蘇臺)를 짓게 했고, 서시와 정단을 바침으로써 부차의 마음을 흐리게 하였소. 이제 군사를 일으켜 오()나라로 쳐들어가면 어떻겠소?"

문종(文種)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직 아닙니다.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습니다. 그런데 금년에 마침 우리 나라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왕께서는 장차 이 일부터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과인은 백성들의 기근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소. 이 재앙을 어찌 해결하면 좋겠소?"

이번에는 범려(范蠡)가 나서서 대답했다.

그런데 그의 말이 엉뚱했다.

"왕께서는 전혀 근심하실 바가 아닙니다. 이번의 기근은 월()나라에게는 행운이요, ()나라에게는 재앙입니다."

구천(句踐)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재상은 잘못 말한 것이 아니오? 기근이 든 것은 우리 월나라인데 어찌 행운이며, 오나라는 풍년이 들었는데 어찌 재앙이라고 하는 것이오?"

"이제야말로 오()나라의 창고를 비게 할 때가 왔습니다. 지금 부차(夫差)는 우리나라를 믿고 있습니다. 후환에 대해서는 전혀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럴 때 몸을 낮추고 오나라에 식량 원조를 청하면 오나라의 풍년이 어찌 우리 월나라에게 다행이 아닐 수 있으며, 우리 월()나라의 흉년이 오나라에게는 재앙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신에게 좋은 계책이 있으니, 왕께서는 오()나라로 사람을 보내어 곡식을 꾸어달라고 하십시오."

이제 구천(句踐)은 범려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믿었다.

그는 즉시 문종을 사자로 삼아 오왕 부차에게로 보냈다.

문종(文種)은 이미 재물로써 태재 백비를 사로잡았기 때문에 쉽게 그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그는 이번에도 많은 뇌물을 바치고 백비에게 식량 원조의 주선을 청탁했다.

백비는 문종을 데리고 고소대로 가 부차를 알현했다.

"월나라에서 사자가 왔습니다."

"무슨 일이오?"

문종(文種)이 나서서 아뢰었다.

"금년에 월()나라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고 있는 형편입니다."

"바라건대 왕께서는 우리 월()나라를 위해 곡식 1만 석을 꾸어주십시오. 내년이면 반드시 갚아드리겠습니다."

부차(夫差)는 정사에 관심을 잃은 지 오래다.

태재 백비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느냐는 눈빛이었다.

백비가 머뭇거림 없이 대답했다.

"월왕 구천(句踐)은 이미 대왕의 신하입니다. 월나라 백성 또한 대왕의 신하나 마찬가지입니다. 어찌 곡식을 아껴 백성들을 굶주림에 허덕이게 할 수 있겠습니까? 마땅히 꾸어주시어 대왕의 은덕을 만천하에 펴십시오."

이때 오자서(伍子胥)는 월나라에서 문종이 와 식량 원조를 청한다는 말을 듣고 기겁했다.

'이번에 식량을 꿔주면 우리 나라 창고는 텅 비게 된다. ()나라는 결코 그 곡식을 갚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다시 관복을 입고 고소대로 달려왔다.

"식량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나라와 월()나라는 함께할 수 없는 원수지간으로서, 국경을 접한 이웃일 뿐 아니라 교통마저 편리합니다. 언제 저들이 쳐들어올지 모르는 터에 왕께서는 어이하여 저들의 힘을 늘려주시려 하십니까?"

"저들에게 곡식을 보내는 것은 원수의 힘을 키우는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나중에 후회하면 때가 늦습니다. 절대로 곡식을 보내지 마십시오. 오히려 이 기회를 맞아 월()나라를 아예 없애버리십시오."

그러자 부차(夫差)의 얼굴에 비웃음이 가득 서렸다.

"그대의 말은 틀렸소. 내가 듣기로, '의로운 군대는 굴복한 나라를 공격하지 않고, 어진 사람은 굶주린 사람을 구제한다' 라고 하였소. ()나라가 이미 우리에게 굴복하였는데 그들을 친다는 것은 의로운 군대가 아니오. 나는 월나라를 구휼할 것이오."

끝내 오왕 부차(夫差)는 오자서의 간언을 물리치고 곡식 1만 석을 문종에게 내주었다.

문종(文種)은 머리를 조아리며 약속했다.

"왕께서 우리 월나라를 불쌍히 여기시어 곡식을 보내시니, 내년에는 반드시 곡식을 돌려드리겠습니다."

문종이 1만 석의 곡식을 싣고 돌아오자 월왕 구천(句踐)의 기쁨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컸다.

그는 굶주리는 백성들에게 그 곡식을 풀었다.

백성들은 구천의 은덕을 칭송했다.

그 이듬해 월()나라는 풍년이 들었다.

반면 오()나라는 흉작이었다.

구천(句踐)이 범려와 문종을 불러 물었다.

"지난해에 오나라로부터 빌린 곡식을 떼어먹자니 신용을 잃게 되고, 곡식을 갚자니 이는 우리 월()나라의 큰 손해요. 대관절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범려(范蠡)가 주저함이 없이 입을 열었다.

"그 일은 간단합니다. 왕께서는 곡식 중에 상등품만 골라 오()나라로 보내되, 그 전에 솥에다 살짝 찌십시오."

"곡식을 솥에다 찌는 까닭은 무엇이오?"

곁에 있던 문종(文種)이 범려의 뜻을 알아차리고 대신 대답했다.

"우리가 보낸 곡식이 상등품인 것을 보면 오()나라는 반드시 그것을 두었다가 내년 봄에 씨로 쓸 것입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찐 곡식을 보냄으로써 오나라에 신용을 지킴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오나라의 내년 농사를 망치게 하자는 것입니다."

"오왕이 그 곡식을 다 먹어버리면 그 계책은 실패로 끝나는 것이 아니겠소?"

이번에는 범려(范蠡)가 웃음을 머금으며 대답했다.

"그 점은 염려하지 마십시오. 오나라 궁실에는 이미 우리 나라에서 보낸 간자(間者)가 있습니다. 그 간자는 틀림없이 오왕 부차로 하여금 우리가 보낸 곡식을 내년에 씨앗으로 삼게 할 것입니다."

"간자라니?"

"왕께서는 서시(西施)를 잊으셨습니까?"

순간 구천(句踐)은 범려의 말뜻을 깨달았다.

범려와 문종의 치밀한 계책에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이내 곡식 중 상등품을 가려 솥에다 살짝 찌게 한 후 오()나라로 보냈다.

오왕 부차(夫差)는 구천으로부터 빌려준 곡식을 받자 과연 크게 칭찬했다.

"월왕은 참으로 신용이 있는 사람이다. 더욱이 보내온 것이 모두 상등품이 아닌가."

그러나 그는 곡식이 살짝 익힌 것임을 전혀 알지 못했다.

여기에 범려로부터 지시를 받은 서시(西施)가 한마디 거들었다.

"본래 월()나라 땅은 토질이 비옥하여 곡식이 매우 실합니다. 이 곡식을 이대로 먹을 것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나눠줘서 내년에 심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네 말이 옳다."

부차(夫差)는 기뻐하며 월나라에서 보내온 곡식을 모두 백성들에게 나눠주어 내년 농사에 심도록 했다.

이듬해 봄,

()나라 백성들은 월나라에서 보내온 곡식을 심었다.

하지만 이미 솥에 찐 곡식이 제대로 자라 날 리 없었다. 오나라는 크게 흉년이 들었다.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 아우성을 쳤고, 부차(夫差)는 이를 구휼하기 위해 군량미를 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물론 그때까지도 그들은 월()나라가 찐 곡식을 보냈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다만 토질이 달라 그런 줄 알았다.

 

39장 미인 서시(西施) (8)

 

​- 오나라 흉작!

이 보고를 받은 월왕 구천(句踐)은 쾌재를 불렀다.

범려와 문종을 불러 다시 물었다.

"이제야말로 군사를 일으켜 오나라를 칠 때가 되지 않았소?"

그런데 범려(范蠡)가 또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오()나라를 칠 때가 아닙니다. 오나라 조정에는 아직도 오자서(伍子胥)와 같은 충신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 나라 군사들도 아직 강한 군사들이 아닙니다. 부차로부터 오자서를 떼어놓고 군사를 좀더 훈련 시킨후에야 오나라를 쳐 이길 수 있습니다."

구천(句踐)은 실망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오자서를 부차에게서 떼어놓을 것이며, 언제까지 우리 군사를 훈련시켜야 한단 말이오?"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지금까지 왕께서는 7년을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기다려왔습니다. 서시(西施)의 보고에 의하면 오자서(伍子胥)는 오왕의 신임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오자서(伍子胥) 스스로가 타국으로 망명하거나 부차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 사이 우리는 군사 훈련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것입니다."

범려와 문종의 설득에 구천(句踐)은 조급증을 가라앉혔다.

그 해 범려(范蠡)는 군사 훈련에 한층 더 열정을 쏟았다.

()나라 군사들은 일찍이 여검객 월녀(越女)로부터 검술을 전수받았기 때문에 칼을 쓰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부족한 것은 궁술이었다.

범려(范蠡)는 군사들에게 집중적으로 궁술을 훈련시키던 중 우연히 한 초부로부터 진음(陳音)이라는 사람에 관한 소문을 들었다.

"재상께서는 어찌하여 진음을 초빙하지 않으십니까?"

"그가 어떤 사람이오?"

"진음(陳音)은 원래 초나라 사람이었으나 젊어서 살인죄를 저지르고 우리 나라로 도망쳐온 사람입니다. 그는 백발백중의 명궁일 뿐 아니라 한번에 세 마리의 새를 쏘아 맞추는 신기(神技)를 지니고 있습니다."

범려(范蠡)는 관심을 품고 진음을 찾아갔다.

마침 그는 집 뒤의 공터에서 활쏘기를 연습하고 있었다. 과연 백 발이면 백 발 다 과녁에 가서 적중했다. 더욱이 그가 사용하는 활은 여느 활과 달랐다.

범려(范蠡)는 기뻐하며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 활의 이름은 무엇이오?"

진음(陳音)이 대답했다.

"이것은 활()이 아니라 노()라고 합니다.

"활과 노는 어떻게 다르오?"

"원래 노()는 활에서 생겨난 것이요, 활은 탄()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탄은 탄궁(彈弓)이라고 하는데 작은 탄환을 튕겨 적을 쏘아 맞추는 것이지요."

탄궁은 오늘날의 새총 같은 것이다.

탄궁(彈弓)은 고대의 어느 효자가 만든 것이라고 한다.

옛날 석기시대 사람들은 주로 숲 속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배가 고프면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숲 속의 짐승을 잡아먹었다.

목이 마르면 안개와 이슬을 마셨다.

그러다가 죽으면 백모(白茅)에 싸서 들판에 내다버렸다. 그 시체들은 대부분 들짐승들에 의해 뜯어먹히곤 하였다.

그런데 어느 효자 하나가 들짐승과 날짐승들에 의해 자기 부모의 시체가 뜯어먹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파 어떻게 하면 그 짐승들을 쫓아낼까 고심했다.

그리하여 고안해낸 것이 탄궁(彈弓)이었다.

원시인들은 그 탄궁을 보고 이렇게 노래했다.

단죽속죽(斷竹續竹) 비토축육(飛土逐肉).

대나무를 잘라 이어 흙덩어리를 쏘아 짐승을 쫓았네 라는 뜻이다.

대나무 조각을 길게 이어 잡아당긴 후 그 끝에 흙덩어리나 돌멩이로 놓아 튕겨 날아가게 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 효자는 이 탄궁(彈弓)으로 자기 부모의 시체를 보호했다.

그 후 삼황(三皇) 중 신농(神農) 대에 이르러 대나무를 휘어 양쪽 끝에 질긴 나무 껍질을 엮어 오늘날과 같은 활을 만들었고, 나무를 깎아 화살로 사용했다.

이것이 바로 궁()이다.

오제(五帝) 중의 한 사람인 요() 임금 때에 이르러 초나라 형산 땅에 호보(弧父)라는 사람이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부모를 잃고 산야에서 홀로 자라났다. 짐승을 잡기 위해 활 쏘는 법을 익혔는데, 어찌나 그 솜씨가 좋은지 제아무리 날쌘 짐승도 그의 화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뒤 호부는 예(羿)라는 사람에게 활 쏘는 법을 전수했다.

예라는 이름은 고대 중국의 신화에도 등장한다.

<회남자(淮南子)>에 의하면 요 임금 때 10개의 태양이 한꺼번에 나타나 오곡을 태우고 초목을 말라죽게 했다.

이에 활의 명인인 예(羿)가 요 임금의 명을 받들어 9개의 태양을 활로 쏘아 떨어뜨리고 한 개의 태양만 남게 하여 재앙에서 벗어났다고 하는 이야기다. 이는 곧 예 덕분으로 요 임금이 천하를 안정시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羿)는 다시 봉몽(逢蒙)에게 자신의 활 솜씨를 전했다.

봉몽 또한 활을 잘 쏘는 사람으로 후세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인물이다.

<회남자(淮南子)>에 이런 구절이 있다.

하루 종일 말하면 그 중에는 성인(聖人)의 말이 있고, 백 발 화살을 쏘다보면 그 중에는 예와 봉몽의 솜씨가 있다.

마구 떠들어대는 중에도 어쩌다 훌륭한 말이 있으며, 백 발 화살을 쏘다보면 그 중에 한 발쯤은 예(羿)나 봉몽(逢蒙) 정도와 같은 멋진 솜씨도 나온다라는 뜻이다.

봉몽(逢蒙)은 심성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자신이 천하 제일의 명궁이 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스승인 예(羿)가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스승인 예의 솜씨를 능가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아예 예(羿)를 죽이고 자신이 천하 제일의 명궁임을 자처했다.

이 이야기는 <맹자> <이루(離婁)> 편에 소개되고 있다.

봉몽이 예(羿)를 죽인 것은 그 스승인 예에게도 책임이 있다.

스승을 죽일 정도의 인품을 제자로 삼은 예(羿)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맹자는 단정지은 것이다. 그러나 <맹자> 외의 다른 문헌들은 봉몽(逢蒙)이 스승 예를 죽인 일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 뒤 다시 봉몽은 금씨(琴氏)에게 활 쏘는 법을 전했다.

금씨는 여러나라 제후들이 서로 싸우는 것을 보고 예전의 활만으로는 승리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만들어낸 것이 노().

즉 활을 눕혀 기계를 설치하고 동시에 여러 대의 화살을 쏠 수 있게 한 것이다.

금씨(琴氏)는 이 노()를 초나라에 전했고, 그때부터 초()나라는 대대로 복숭아 나무로 노를 만들고 대추나무로 화살을 만들어 일약 군사 강국으로 성장한 것이었다.

"저의 선조는 대대로 궁노 쓰는 법을 자손에게 가르쳤으며, 저 또한 그 법을 배워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는 활과 달라서 그것을 사용하면 새가 날기도 전에 떨어뜨릴 수 있고, 짐승이 달리기 전에 쏘아 맞힐 수 있습니다. 어찌 탄궁(彈弓)이 궁과 같을 수 있으며, 궁이 노와 같을 수 있겠습니까?"

진음으로부터 활()과 노()에 대한 내력을 들은 범려는 뛸 듯이 기뻐했다.

곧 허리를 숙이고 정중하게 청했다.

"선생을 우리 나라 군대의 활 스승으로 삼고 싶습니다."

진음(陳音)은 범려의 초빙을 수락하고 그 길로 회계성으로 들어갔다.

그때부터 진음(陳音)은 월나라 군사 3천 명을 뽑아 노() 제작법과 사용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마침내 월나라 군사들은 한 번에 화살 세 대를 연달아 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아무리 강하고 날랜 군사라도 이 연노(連弩) 앞에서는 몸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진음(陳音)은 군사를 가르치는 데 열심인 나머지 3개월째 접어들면서 병이 나 죽고 말았다. 월왕 구천(句踐)은 진음의 죽음을 몹시 아시워했다. 그를 위해 극진히 장사지내 주었다.

그리고 그가 묻힌 산 이름을 진음산(陳音山)이라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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