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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0장 오자서(伍子胥)의 죽음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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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4회 작성일 23-02-20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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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장 오자서(伍子胥)의 죽음 (5)

 

그 날 밤이었다.

부차(夫差)는 서시의 방을 찾았다.

그녀의 육체를 탐닉함으로써 낮에 있었던 불쾌한 일을 잊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서시(西施)를 품에 안아도 부차의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서시는 시녀들을 통해 낮에 있었던 일을 이미 알고 있었다.

또한 월()나라 범려로부터 새로운 지시를 받은 터였다.

그녀는 오늘이야말로 자신의 마지막 임무를 수행할 때라고 생각했다.

부차의 품을 파고들며 물었다.

"왕께서는 오자서에 관한 소문 때문에 심기가 불편하십니까?"

"소문? 무슨 소문?"

"오자서(伍子胥)가 그 아들을 제나라 포씨 집에 맡기고 왔다는 소문 말입니다."

"오늘 낮에 오자서에게 어지러운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가 아들을 제()나라에 맡기고 왔다는 말은 금시초문(今時初聞)이다. 그것이 사실이냐?"

 

"백성들도 다 아는 일을 어찌 왕께서 모르십니까? 신첩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내일이라도 사람을 보내어 알아보면 될 것입니다. 지금 항간에서는 오자서(伍子胥)가 장차 반역을 꾀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원래 오자서(伍子胥)는 아들 오봉을 제나라 대부 포식의 집에 맡긴 일에 대해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아내에게조차 비밀로 부치고 있었다.

태재 백비조차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오자서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던 월나라 재상 범려의 눈만은 속이지 못했다. 그는 오자서를 제거할 절호의 기회라 여기고 극비리에 서시에게 그 정보를 전달했고, 서시(西施)는 이제나저네나 그 일을 폭로할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서시의 말을 들은 오왕 부차의 눈에서는 분노의 불길이 활화 타올랐다.

오자서(伍子胥)가 비록 자신에게 입에 담지 못할 소리를 떠벌려대기는 했으나 그 모든 게 오()나라를 위한 충정에서일 것이라며 참아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자신의 아들을 제()나라에 빼돌려놓았다니.

이야말로 배신 중의 큰 배신이 아닐 수 없었다. 서시의 말대로 반역을 계획하고 있지 않는 한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과인은 오자서(伍子胥)를 능지처참하리라!"

다음날 부차(夫差)는 아침 일찍 태재 백비를 불러 물었다.

"경은 오자서가 자기 아들을 제()나라에 남겨두고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소?"

백비() 또한 깜짝 놀랐다.

"신은 금시초문입니다. 왕께서는 그런 소문을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과인이 어디서 들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오. 빨리 사람을 보내어 사실 여부를 알아보시오!"

백비()는 곧 궁중 시종을 오자서의 집으로 보냈다.

잠시 후 시종이 돌아와 보고했다.

"오자서의 아들 오봉(伍封)은 집에 없습니다. 제나라 대부 포식의 집에 머물러 있으며, () 또한 왕손씨(王孫氏)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설마 했던 부차(夫差)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태재 백비도 놀라는 가운데 속으로 머리를 재빨리 굴렸다.

'이제야 오자서(伍子胥)를 죽일 명분이 생겼구나.'

그가 막 뭐라고 아뢰려는데 부차가 추상같은 영을 내렸다.

"무사들은 오자서를 당장 잡아 대령하라. 내 친히 국문한 후 능지처참하겠다."

그러나 백비의 생각은 달랐다.

조정에는 오자서(伍子胥)를 지지하는 대부들이 상당수 있다.

오자서를 국문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개입하고 오자서가 그럴듯한 변명을 내세우면 오왕 부차의 마음은 언제 또 변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백비()는 재빨리 부차 앞으로 나가 말했다.

"신 백비가 왕께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이오?"

"오자서(伍子胥)는 선왕 대부터의 대신입니다. 우리 오()나라에 대한 공도 적지 않습니다. 왕께서는 진노를 누르시고 좀더 신중하게 이 일을 처리하시기 바랍니다."

"오자서(伍子胥)가 선왕 대부터의 대신인지라 과인의 분노가 더욱 큰 것이오. 이는 배신을 넘어서 역모나 마찬가지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소."

"옳으신 말씀입니다만, 오자서를 친히 국문하여 그 죄를 밝히다보면 우리 오()나라의 불미스런 일이 만천하에 알려지게 됩니다. 이는 스스로 왕의 체통과 위신을 깎는 일밖에 되지 않습니다."

"..............................!"

"또한 그 죄상을 백성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은 선왕 대부터의 대신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번거롭게 형장을 벌일 필요 없이 오자서(伍子胥) 스스로 자결하게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도일 것입니다."

"오자서(伍子胥)가 스스로 자결할 까닭이 없질 않소?"

백비()는 누구보다도 오자서의 성격을 잘 안다.

그는 천하 영걸임을 자처하는 사나이다.

명예와 자존심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자신의 아버지와 형이 억울하게 죽은 것에 대해 복수를 꿈꾸고 실현한 것도 바로 그러한 성품 때문이 아니었던가.

이런 성품의 사람은 치욕(恥辱)을 가장 싫어한다.

"왕께서는 오자서의 그간의 공을 생각하시어 보검 한 자루를 그에게 하사하십시오. 그러면 그는 왕의 뜻을 알아차리고 반드시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입니다."

"그럴까..........? 그가 자결할까?"

부차의 의심에 백비()는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

오왕 부차에 대한 경멸이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그러한 마음을 추호도 내비치지 않았다.

"그는 왕께서 내린 칼을 보면 틀림없이 자결할 것입니다."

백비의 장담에 부차(夫差)는 마음을 정했다.

"알겠소. 마침 과인에게 '촉루(屬鏤)' 라는 보검이 있으니, 그 칼을 오자서에게 내리도록 하리다."

오자서(伍子胥)는 하루 종일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몹시 우울했다.

'어쩌다 일이 이 지경까지 되었는가?'

오왕 부차의 오만한 얼굴이 떠올랐고 태재 백비의 간교한 눈매가 눈앞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오자서(伍子胥)는 확신하고 있었다.

'월왕 구천(句踐)은 반드시 우리 오나라를 들이칠 것이다!'

월나라가 쳐들어오는 날 오()나라는 큰 화를 당할 것이다.

그런데 부차(夫差)는 월나라를 철석같이 믿고 있다.

그것을 뒤에서 부추기는 사람은 태재 백비였다.

또 한 사람의 얼굴이 그의 눈앞을 스쳐갔다.

수년 전에 세상을 떠난 대부 피이(被離)였다.

피이(被離)는 공자 광(), 즉 오왕 합려의 심복으로서 오나라 최고의 인물 감별가였다. 그는 오자서가 초나라에서 망명해온 백비를 천거할 때 극력 반대했었다.

- 호걸께서는 백비의 겉만 보았을 뿐, 그 속은 보지 못하고 계십니다.

- 제가 백비()의 관상을 본즉, 그의 눈은 매 같고 걸음걸이는 범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욕심이 많고 야심이 대단하며, 잔인해서 사람 죽이기를 좋아합니다. 제가 호걸(豪傑)을 위해 한마디 충고하면, 백비와 가까이 지내지 마십시오. 너무 믿었다가는 반드시 해를 당할 것입니다.

'아아, 나는 지난날 피이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오자서(伍子胥)는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40장 오자서(伍子胥)의 죽음 (6)

 

어느 사이에 잠이 들었는가.

오자서(伍子胥)는 잠깐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아버지 오사(伍奢)와 형 오상(伍尙)을 보았다.

그들은 오자서 앞에 나타나 말없이 울기만 했다.

오자서(伍子胥)는 꿈속에서나마 아버지와 형을 본 것이 반가워 두 사람의 손을 움켜잡았다.

그러는 순간 그들의 모습이 홀연 눈앞에서 사라졌다.

- 아버지, 형님.................!

오자서(伍子胥)는 안타까움에 소리 지르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마음이 더욱 심란했다.

공연히 가슴이 쿵쿵거렸다.

'이상하구나. 왜 이리 불안한가. 이제껏 한 번도 꿈속에 나타난 일이 없던 아버지와 형의 꿈을 꾸었기 때문인가.'

그럴 때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왕명이오!"

왕명이라는 말에 오자서(伍子胥)는 정신이 번뜩 들었다.

서둘러 의관을 갖추고 궁에서 나온 시종을 맞아들였다.

시종은 뜰 한 가운데 서서 부차의 명령을 전했다.

"왕께서 재상에게 이 보검을 하사하시었소."

오자서(伍子胥)는 보검을 받았다.

예전에 그도 한 번 본 적이 있는 보검인 촉루(屬鏤)였다.

부차(夫差)가 아끼는 칼 중의 하나다.

그는 대번에 부차의 뜻을 알았다.

'자결하라는 뜻이로구나.'

방금 전 꿈속에서 아버지와 형이 나타나 말없이 울다 사라졌던 이유를 그제야 깨달았다.

오자서(伍子胥)는 마음을 정리하고 자신의 뜻을 정했다.

촉루(屬鏤)를 두 손으로 받들어 허공 높이 치켜들며 큰 소리로 외쳤다.

"하늘이시여, 하늘이시여! 지난날 선왕은 부차를 의심하여 나라를 맡기지 않으려 했건만, 나는 부차(夫差)를 왕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또 피이(被離)는 백비를 쓰지 말라고 충고했건만, 나는 백비()를 높은 지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엇입니까. 부차(夫差)는 나의 충고를 듣지 않고 백비는 간교한 말로 촉루를 보내게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불찰입니다. 나는 오늘 죽습니다만, 내일이면 월()나라 군사가 쳐들어와서 오()나라 사직을 파헤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말을 마치자 오자서(伍子胥)는 보검을 뽑아들었다.

날카로운 빛이 뜰 안에 번뜩였다.

오자서(伍子胥)는 칼을 거꾸로 쥔 후 이번에는 집안 식구와 문객들을 향해 말했다.

"너희들은 내가 죽은 후 두 가지 일을 해주기 바란다."

"유명(遺命)을 반드시 따르겠습니다."

"내가 죽거든 두 눈을 뽑아 동문 위에 걸어놓아라. ()나라 군사들이 쳐들어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볼 것이니라."

"................................!"

"또한 내가 죽거든 나의 무덤 위에 가래나무를 한 그루 심어라. 그리하여 부차(夫差)가 구천의 손에 죽게 될 때 그 가래나무로 부차의 관을 짜도록 하라!"

참으로 지독스런 유언이었다.

이윽고 오자서(伍子胥)는 칼끝을 자신의 목에 대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칼은 오자서의 목을 뚫고 뒤로 삐져나왔다.

춘추시대 끝자락인 어지러운 시대에 태어나 온갖 역경과 고난을 헤치고 활약한 시대의 주인공으로 활약한 풍운아 오자서(伍子胥)가 역사 무대 저편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하늘도 한 영걸(英傑)의 사라짐을 알았음인가.

별안간 먹장구름이 몰려들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뜰에 서서 오자서의 죽음을 지켜보던 식구와 문객들은 통곡하여 핏물과 빗물이 섞여 흐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궁에서 나온 시종은 오자서의 목에 꽂힌 촉루검을 뽑아 궁으로 돌아갔다.

부차(夫差)가 시종에게 물었다.

"유언은 무엇이더냐?"

시종은 사실대로 말했다.

부차의 얼굴살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자가 죽으면서까지 그런 저주를 남겼단 말인가?"

그는 즉시 수레를 타고 오자서의 집으로 갔다.

오자서(伍子胥)의 시체는 그때까지도 뜰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부차(夫差)는 한 손에 촉루검을 거머쥐고 오자서의 시체를 향해 외쳐댔다.

"오자서야, 죽은 후에 네가 무엇을 볼 수 있겠느냐?"

말을 마침과 동시에 그는 칼을 들어 오자서의 목을 끊었다.

부차(夫差)는 좌우를 둘러보며 또 명했다.

"그의 소원대로 이 목을 성문 위에 걸어놓아라. 하지만 동문(東門)이 아니라 월()나라를 바라볼 수 있는 남문(南門) 위에 걸어라. 죽은자가 과연 무엇을 볼 수 있을 것인지 나는 확인해보리라!"

그는 또 외쳤다.

"오자서의 목 없는 시체를 치이(鴟夷)에 담아 전당강에 던져 버려라. 해와 달이 너의 뼈를 녹일 것이며, 물고기와 자라가 너의 살을 뜯을 것이다."

치이란 말가죽으로 만든 술부대를 말한다.

궁중 무사들은 부차(夫差)가 시키는 대로 오자서의 목을 남문에 내걸고 그 시체를 치이(鴟夷)에 담아 강물 속에 던져버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오자서(伍子胥)의 시체는 가라앉지 않았다. 물에 둥둥 떠 다니다가 며칠 후 한 언덕에 닿았다. 그 근처에 사는 어부 하나가 오자서의 시체가 담긴 술부대를 발견하고 건져올려 몰래 오산(吳山)에다 장사 지내주었다.

그 후 사람들은 그 산을 서산(胥山) 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오자서(伍子胥)가 묻힌 산이라는 뜻이었다.

아울러 무덤 앞에 사당을 지어 해마다 성대한 제사를 지내며 원통하게 죽어간 오자서의 넋을 위로했다.

서산(胥山)은 강소성 오현 서남쪽에 위치해 있는데, 지금도 그 곳에 가면 오자서의 사당이 세워져 있다.

- 앓던 이를 뺀 것처럼 시원하다!

오자서를 죽인 오왕 부차(夫差)는 더 이상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게 되자 하늘을 날듯 기분이 상쾌했다.

그는 오자서의 후임으로 백비를 재상으로 올려 나라일을 다스리게 했다.

백비()는 마침내 자신의 소원을 이룬 것이었다.

애릉 전투에서 제()나라를 격파한 이후 오왕 부차(夫差)는 새로운 야망에 부풀어 있었다.

이른바 '천하 패업'이었다.

그는 북방으로 향하는 교통로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제 2차로 물길을 뚫었다.

3년 전에는 장강과 회수(淮水)를 연결하는 운하를 팠다.

이번에는 회수와 제수(濟水)사이에 운하를 파 두 강의 물길을 연결시킨 것이었다. 이로써 오()나라 사람들은 배를 타면 가만히 앉아 제()나라에 다다를 수 있었다.

남북을 잇는 이 교통로 개척은 당시로서 대단히 획기적인 것이었으며, 후일 중국 대륙이 하나의 생활문화권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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