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장 오월춘추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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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1장 춘추(春秋), 덧없는 사라짐이여 (5)
다음날부터 월(越)나라
군사는 오성을 총공격하기 시작했다.
북소리가 울리고 함성이 일었다.
범려(范蠡)와 문종(文種)은 집중적으로 남문을 공략했다.
낮이고 밤이고 공격을 퍼부었다. 오나라 군사들은 이제 싸울 힘도
없었다. 공격을 가한 지 3일째 되는 날 밤, 마침내 남문이 부서졌다.
범려(范蠡)와 문종이
앞장서서 성안으로 돌입하려 할때였다.
별안간 하늘에서 날카로운 빛이 쏟아지며 남문 위를 환하게 비쳤다.
그 빛덩어리는 차츰 하나의 형상으로 바뀌어갔다.
"앗...................!"
월(越)나라 군사들
사이에 경악의 외침 소리가 일었다.
모두들 그 자리에 멈춰섰다.
보라! 남문 위 허공에 한 사람의 머리가 둥실 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다름 아닌 오자서의 얼굴이었다.
밤하늘에 떠 있는 오자서(伍子胥)의 얼굴 크기는 병차 바퀴만 했다.
"이럴 수가!............................."
범려(范蠡)를 비롯한
월나라 군사들은 자기 눈을 의심했다.
한순간 오자서(伍子胥)의
두 눈에서 번갯불이 번쩍 일었다.
흐트러진 머리칼과 수염이 일시에 꼿꼿하게 곤두섰다. 오자서의
두 눈에서 발하는 광채는 10리 밖까지 비추었다.
그 광경을 보고 월군(越軍)이
어쩔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별안간 폭풍이 몰아쳐왔다.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며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진동했다.
모래가 온 천지를 뒤덮고 급기야는 돌멩이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월(越)나라 군사
중에는 바람에 날아가거나 돌멩이에 맞아 죽은 자가 속출했다.
강변에 매어둔 배들도 닻줄이 끊어져 강 한가운데로 떠내려갔다.
범려(范蠡)와 문종(文種)은 당황함을 감출 수 없었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월왕 구천(句踐)이 달려와 초조하게 외쳤다.
"이게 무슨 조화인가.
오자서(伍子胥)는 죽어서도 오(吳)나라를 지키려 함인가."
"잠시 기다려보십시오.
신이 오자서를 설득해보겠습니다."
범려(范蠡)와 문종(文種)은 입술을 깨물며 결심했다.
옷을 벗어던지고 반벌거숭이가 된 채 쏟아지는 빗발 속으로 걸어나갔다. 그러고는
오성 남문을 향해 꿇어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오자서여, 오자서여. 그대는 부차(夫差)의
포악함을 잊으셨는가? 그대의 죽음을 잊으셨는가. 그대의 유언을
잊으셨는가?"
얼마 후, 바람과 비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제야 월군(越軍)은
진정했다.
범려(范蠡)와 문종(文種)은 군막으로 돌아가 쓰러지듯 자리에 누웠다.
그 날 밤이었다.
범려는 꿈을 꾸었다.
오자서(伍子胥)가
하얀 옷을 입고 하얀 말이 모는 하얀 수레를 타고 달려왔다. 얼굴은 살아 있을 때와 다름없이 웅장하고
비범했다.
오자서가 수레를 멈추고 우렁찬 음성으로 말했다.
- 나는 너희 월(越)나라가 쳐들어올 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죽을 때 동문에 나의 머리를 매달아달라고 유언했다. 월나라가
오(吳)나라로 쳐들어오는 것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오왕 부차(夫差)는
나의 머리를 동문에 내걸지 않고 남문에 내걸었다.
- 아아, 오(吳)나라에 대한 충성을 어찌 하루아침에 버릴 수가 있겠는가. 나는 오성을 지키기 위해 비바람을 일으켰다. 하지만 오나라가 멸망하는
것은 이미 하늘의 뜻이다. 내 어찌 하늘의 뜻을 막을 수 있으리오. 너희가
오성(吳城)으로 들어가려거든 동문을 통하라. 내 월(越)나라를 위해
동문의 길을 열어놓으리라!
범려(范蠡)는 꿈에서
깨어났다.
그때 마침 문종(文種)이
달려왔다.
"이상한 꿈을 꾸었소."
문종은 꿈 내용을 들려주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범려의 꿈과 똑같았다. 두 사람은 동시에 같은 꿈을 꾼 것이다.
범려(范蠡)와 문종(文種)은 월왕 구천에게로 달려갔다.
꿈 이야기를 들은 구천(句踐)이
기뻐하며 지시했다.
"오늘부터는 동문을 공격하시오!"
월군은 물길을 따라 동문으로 이동했다.
그들의 전함이 동쪽 사문(蛇門)과
장문(匠門) 가까이 다가갔을 때였다.
별안간 태호의 물이 끓듯 넘쳐흐르더니 동쪽으로 들이닥쳤다.
그 물살은 여간 세차고 흉흉한 게 아니었다.
급류는 사문(蛇門)과
장문(匠門) 사이의 모퉁이에 가서 세게 부닥쳤다.
그 바람에 성벽 일부가 무너지며 큰 구멍이 생겨났다. 밀어닥치는
물살을 따라 아름다운 물고기들이 무수히 성안으로 휩쓸려 들어가고 있었다.
범려(范蠡)가 뱃전에
서서 소리쳤다.
"이것은 오자서(伍子胥)가 우리를 위해 길을 열어주시는 것이다."
월나라 군사들은 일제히 그 뚫어진 성의 구멍으로 뛰어들어갔다.
이로써 오성(吳城)은
월나라 군사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월군(越軍)이 오성
안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한 대신이 달려나와 그들을 맞이했다. 오나라 재상 백비였다.
그는 비굴한 웃음을 감추지 않으며 범려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항복하오. 내가
그대를 왕궁으로 안내하겠소."
범려(范蠡)와 문종(文種)이 백비의 안내를 받아 왕궁을 들이쳤을 때는 부차(夫差)는 이미 오성을 빠져나간 뒤였다.
범려가 군사들을 향해 외쳤다.
"오왕(吳王)을 뒤쫓아라!"
그 시각, 부차(夫差)는 왕손락과 아들 셋을 데리고 서쪽 문을 빠져나가 양산(陽山)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굶주림과 갈증으로 기진맥진했다.
눈앞이 가물거리고 현기증이 일었다.
왕손락(王孫駱)과
아들 셋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음식을 주지 않았다.
그들은 밭으로 들어가 생낟알을 훔쳐 오왕 부차(夫差)에게 바쳤다.
부차(夫差)는 워낙
배가 고팠던지라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마구 씹어먹었다. 겨우 허기를 면한 부차는 땅바닥에 엎드려
흐르는 시냇물을 마신 후 물었다.
"내가 지금 먹은 것이 무엇이냐?"
"익히지 않은 곡식 알갱이입니다."
문득 부차(夫差)가
탄식했다.
"지난날 점복가인 공손성(公孫聖)이 내 꿈을 해몽하며 말하기를 '싸움에 패하여 도망다니며 화식(火食)을 못할 것입니다.'라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을 두고 하는 말일 줄이야!"
왕손락(王孫駱)이
부차를 위로했다.
"지난 날을 얘기해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지금은 오로지 몸 숨길 곳을 찾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지난날 나의 요사한 꿈이 이제야 맞았으니 내가 죽을
날도 머지않은 모양이다. 몸을 숨긴들 어디로 숨길 것이며, 숨었다
한들 무엇을 할 것인가?"
절망에 빠진 부차(夫差)는
도망치기를 그만두고 그냥 양산에 머물기로 했다.
다시 왕손락을 돌아보며 물었다.
"내가 공손성(公孫聖)을 죽이고 그 시체를 양산에다 버리라고 했는데, 그 혼령이 아직 이
곳에 있을까?"
"왕께서 친히 한 번 불러보십시오. 있으면 대답을 할 것입니다."
부차(夫差)는 사방을
둘러보며 크게 소리쳤다.
"공손성아!"
- 공손성아........!
메아리였다.
그러나 부차의 귀에는 그것이 공손성의 음성으로 들렸다.
다시 외쳐 불렀다.
"공손성아!"
- 공손성아............!"
"공손성아!"
- 공손성아.............!"
세 번 불렀으나 세 번 다 메아리가 되어 산골짜기에 울려퍼졌다.
부차(夫差)는 무서움이
일었다.
그때 동편 길에서 한 무리의 군사가 나타났다.
월왕 구천(句踐)이
친히 이끄는 정예 군사들이었다.
그들은 부차(夫差)가
숨어 있는 산골짜기를 겹겹이 에워쌌다.
부차는 거듭 눈물을 흘리며 통탄했다.
"내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지 않고 구천을 살려주었기
때문에 하늘이 나를 미워하시고 오늘 우리 오(吳)나라를 버리려
하심이로다!"
왕손락(王孫駱)이
말했다.
"신이 다시 한 번 가서 월왕에게 간곡히 사정해보겠습니다."
부차(夫差)의 눈에
한줄기 빛이 감돌았다.
"가서 말하시오. 한
번만 용서해주면 대대손손 월(越)나라를 섬기며 살아가겠다고."
왕손락(王孫駱)은
산을 내려가 월군 진영으로 갔다.
범려가 나와 그를 맞았다.
제 41장 춘추(春秋), 덧없는 사라짐이여 (6)
또 한 나라가 사라졌다.
이제 오(吳)나라는
없다.
모두 월왕 구천의 땅이 되었다.
- 월왕 만세!
구천(句踐)은 감격했다.
이런 날이 오기를 수없이 기다려왔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자 꿈인
듯 믿어지지 않았다.
월(越)나라 신하는
물론 오나라 신하들까지 오성 궁전 뜰 아래 길게 시립해 있었다. 구천(句踐)은 천천히 그들을 굽어보았다.
문득 낯익은 얼굴 하나가 앞쪽 대열에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오나라 재상 백비였다.
그는 지난날 자신이 월왕 구천(句踐)을 도와준 것을 생색내는 듯한 표정이었다.
구천은 손짓하여 그를 앞으로 불러냈다.
"그대는 오(吳)나라 재상이다. 그대 임금이 지금 양산에 누워 있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내 앞에 서 있는가?"
백비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부끄러움을 못 이겨 슬며시 뒤편으로 빠지려는 것을 범려(范蠡)가 가로막았다.
"그대는 그대가 갈 곳을 진정 모르시오?"
범려의 손이 올라가자 좌우 역사(力士)들이 몰려들어 백비를 잡아챘다.
그 날 백비는 궁전 뜰 앞에서 참수당했다.
그의 식구들 또한 모조리 목이 베어졌다.
월왕 구천(句踐)은
놀라 목을 움츠리는 오나라 신하들에게 말했다.
"그대들은 염려하지 마라. 나는 다만 충신 오자서(伍子胥)의
원수를 갚아주었을 뿐이다."
며칠 후, 구천은 전군을 이끌고 월나라 수도인 회계성으로 돌아갔다.
귀환길은 여간 당당하고 호화롭지 않았다.
오성에서 빼앗은 보화를 실은 수레만도 10리가 넘게 이어졌다.
연도에 나와 승전군을 맞이하는 백성들의 환호 소리는 하늘을 무너뜨리고 강물을 뒤엎을 정도였다.
회계성으로 들어선 구천(句踐)이
별안간 범려를 불러 물었다.
"참, 내가
한 가지 잊은 게 있소."
"무엇인지요?"
"서시(西施)는 어디 있소?"
범려(范蠡)는 구천이
묻는 뜻을 짐작했으나 모르는 척하고 되물었다.
"서시는 무슨 까닭으로 찾으십니까?"
"서시(西施)는 본래 내가 후궁으로 삼으려고 마음먹었던 여인이오. 어쩔 수 없이
부차에게 보내기는 했지만, 이제 부차(夫差)가 죽었으니 당연히 내가 거느려야 하지 않겠소?"
범려의 얼굴빛이 엄숙하게 변했다.
"왕께서는 서시(西施)를 찾지 마십시오."
"찾지 말라니, 그게
무슨 소리요?"
"서시는 간자(間者)입니다. 간자는 그 임무가 끝나면 죽여 없애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나라에 해를 끼칠지 모릅니다."
더욱이 서시(西施)는
오나라를 멸망시켰을 정도의 미인이 아닌가.
월나라로 돌아와 구천의 후궁이 되면 월(越)나라 왕실과 조정을 어지러워질 것이 분명하다.
범려(范蠡)는 이
점을 염려하여 오나라 정벌의 마지막을 서시의 처단으로 장식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구천(句踐)은
그렇지 않았다.
어찌 천하절색의 서시를 죽여 없애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
초조한 듯 입술을 핥으며 물었다.
"그대는 서시(西施)를 죽였소?"
"아직 죽이지 않았습니다. 조만간 죽일 작정입니다."
"안 되오. 죽이지
마시오."
"대왕 전하!"
구천(句踐)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이것은 왕명이오. 만일
그대가 서시(西施)를 죽인다면 과인은 결코 그대를 용서하지
않겠소!"
구천의 협박에 범려(范蠡)는
기가 막혔다.
전날까지도 범려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던 구천(句踐)이 아니던가.
그런데 며칠이 채 지나기도 전에 구천의 행동이 이렇듯 달라지다니.
범려(范蠡)는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아, 그 동안 내가
모시던 왕이 장경오훼의 사람이었단 말인가.'
인물 감별가들 사이에 이런 말이 있다.
- 장경오훼(長頸烏喙)와는 평생을 같이하지 마라.
장경오훼란 목이 길고 입이 삐죽하게 튀어나와 있는 사람을 말한다.
관상학의 용어다.
이런 사람은 끈기가 있고 인내심이 강하다.
그러나 뜻을 성취했을 때는 고집이 세고 오만하기 짝이 없다.
자신의 심복을 의심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어려움은 함께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같이할 수 없다라는 말까지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날 주선왕(周宣王)이
바로 이 장경오훼의 상(相)이었다.
범려(范蠡)는 실망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상부(相府)에 가두어두었던 서시(西施)를
월왕 구천에게 데려다주었다.
"오!"
구천(句踐)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회계성으로 돌아온 첫날밤을 서시와 함께 보냈다.
그 이후로 구천과 범려 사이에는 서먹한 기운이 감돌았다.
구천(句踐)은 범려를
찾는 일이 드물어졌고, 범려(范蠡) 역시 어쩌다가 왕궁으로 들 뿐 대부분을 집에서만 지냈다.
대신 문종(文種)이
나라를 돌보는 일을 전담했다.
오나라를 정벌하여 멸망시킨 구천(句踐)은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과거 부차가 이룩해놓은 모든 것을 자신이 이어받으려 했다.
- 패업을 계승하리라!
그는 군사를 이끌고 회수를 건너 산동 서주(徐州) 땅으로 진출했다.
그 곳에서 제ㆍ노ㆍ송ㆍ진(晉)나라들과
회합하고 삽혈동맹을 맺었다.
또 따로이 주왕실에 사자를 보내어 공물을 바쳤다.
이때 주나라 왕은 주원왕(周元王)이었다.
주원왕은 월왕 구천의 기세에 눌려 곤룡포와 면류관과 규벽(奎璧, 옥의 일종)과 동궁(彤弓, 붉은 활)과 호시(弧矢, 깃발이 달린 화살)를 하사했다.
이는 곧 중원의 백주(伯主)로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킨 다음해의 일이다.
중원 패공의 지위에 오른 구천(句踐)은 회계산에 큰 대(臺)를
쌓고 이름을 문대(文臺)라 하였다.
지난날 부차에게 항복했던 치욕을 씻고 천하 패업을 달성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문대가 완공되는 날, 구천(句踐)은 문무백관을 불러 큰 잔치를 베풀었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구천은 악공을 불러 명했다.
"이렇게 기쁜 날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리오. 악사장은 이 날을 기념할 만한 곡조를 하나 지어 불러라."
악사장이 거문고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오왕(吳王)이 비록
용맹스런 군사를 길렀으나
그 무도함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범려와 문종(文種)의
계책 하나에
오왕은 오자서(伍子胥)를
죽였도다.
이제 오나라를 치지 않으면 언제 치리요
뛰어난 신하들이 모여 마침내 하늘의 뜻을 받들었도다.
한 번 싸움에 1천 리 영토를 열었으니
크고 크도다!
후세에 이 공적 길이 빛날 것이로다.
상 아끼는 일 없고 죄 용서함이 없으니
군신이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도다.
내용인즉 왕과 신하가 하나가 되어 어려움을 이겨낸 끝에 오늘의 이 기쁨을 맞이했다는 축송이었다.
악사장의 노래를 들은 문무백관(文武百官)들은 통쾌함을 이기지 못하고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단 한 사람만이 웃지 않고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월왕 구천(句踐)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오(吳)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 패업을 이룬 것은 온전히 내가 와신상담(臥薪嘗膽)한 덕분이다. 신하들이 대체 무엇을 했기에 함께 그 공을 나누어야
한단 말인가.'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못마땅한 눈길로 악사장을 노려보았다.
그것을 재상 범려가 보았다.
범려(范蠡)는 가슴이
섬뜩했다.
한줄기 서늘한 바람이 등골을 스쳐갔다.
그는 대뜸 월왕 구천의 속마음을 짐작했다.
'아, 왕은 모든
공로를 독차지하려는구나. 신하들을 시기하는 눈빛이 역력하다. 역시
왕은 장경오훼(長頸烏喙)의 인물이 분명하다. 이대로 있다가는 내 종말이 평탄치 않을 것이다. 바야흐로 내가 떠날
때가 되었도다.'
범려(范蠡)가 은퇴를
결심한 것은 바로 이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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