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왕과 나 (King and I)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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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너 리어노우언즈(어릴적 이름은 애너 해리엇 에머 에드워즈. 1834~1914)는 실존 인물로, 시암에서 왕자들과 후궁들을 교육한 것 또한 사실이다. 작중에서 왕이 죽고 어린 쭐랄롱꼰 왕세자가 라마 5세로 즉위하여 왕위를 잇는 것도 실제로 있던 일로 작품 자체가 완전히 허구는 아니다. 하지만 '시암 궁정의 여자 영어 가정교사'를 쓰면서 내용을 자기 중심으로 썼고, 이것이 소설화, 뮤지컬화, 영화화를 거치면서 다시 많이 각색된 것이 문제.
사실상 내용이 태국 왕실판 사운드 오브 뮤직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본인은 자랑으로 여겼다고 하지만 애너가 라마 4세와 사랑을 나눴다는 기록은 애너 본인의 주장 외에는 없다. 늘그막에 서양에서도 이걸 수상하게 여겨 그녀에게 진실을 묻고자 찾아오자[2] 화만 내고 피해다녔다. 이후 이것을 바로잡겠다고 태국이 중심이 되어 몇권의 책이 나왔으나, 이후에 영화가 대박을 치면서... 한마디로 태국의 이미지를 더럽힌 영화이기 때문에 태국에서는 영원히 금지어가 됐다. 역사적 정황으로 라마 4세가 영국인 가정교사와 연애나 할만큼 한가하지도 않았고 괜찮은 왕에 속한다.
극 중에서 애너와 라마 4세가 함께 사교 댄스를 출 때 나온 쉘 위 댄스라는 곡은 훗날 영화 쉘 위 댄스의 주제가로도 쓰여 유명하다.
태국에서는 이 영화를 매우 싫어하는데, 태국 왕실은 아예 이 영화를 혐오할 정도이고, 일반 국민들도 엄청나게 싫어하는 사람이 대다수이다. 태국 여행 가서 이 영화 이야기 잘못하면 태국 일반인들에게도 큰일날 수 있다.[3]
일단 태국 왕이 영국 여자와 연애한다는 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심지어 영화 내용의 실존성(특히 연애)에 대한 정황 증거도 전혀 없는 데다, 라마 4세는 태국에서 라마 5세와 함께 세종대왕처럼 인정받는 왕이다. 한국으로 치면 세종대왕이 일본 여자 사신과 연애했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영화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태국에선 영구 금서 내지 관련 작품들도 모두 발매 금지와 상영 금지된 작품 중 하나이다.
태국을 청나라의 전철을 밟지 않게 하려고 노력한 라마 4세를 외국 여자와 사랑이나 나누는 한가한 인물로 묘사했고, 거기다 버마, 티벳 등으로부터 노예를 들여오는 내용까지 있기 때문.
게다가 영화에서 왕세자로 등장하는 라마 5세가 노예제 폐지론자이자 계몽주의자인 애너의 가르침을 받아서 훗날 왕이 된 이후에 그녀의 가르침에 따라 노예제를 폐지하고 근대적인 개혁을 한다는 것으로 나왔는데... 영화의 원작인 애너 리어노우언즈의 자서전 자체가 본인의 과장과 역사왜곡 논란이 있으니 적당히 걸러서 봐야 한다.
사실 노예제 폐지 등의 근대적 개혁은 부왕인 라마 4세 또한 시도해보려고 했기 때문에 라마 5세의 근대적 개혁이 자신의 가르침 덕분이라는 애너 리어노우언즈의 주장에는 무리가 있고 그보다는 부왕의 뜻을 잘 이어받아서 더욱 큰 업적을 이루어낸 거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다만 자서전의 과장 논란과는 별개로 실제 라마 5세가 국왕으로 즉위한 후 애너 리어노우언즈에게 기사 작위를 내려준 걸 보면 애너와 라마 5세의 관계가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리엔탈리즘적인 요소도 강해서[4] 비서구권 사람들이 내막을 알고 보면 편하기만 한 작품은 아니다.
1956년에 두 번째로 영화화 되었다. 원제는 The King and I(왕과 나). 또 20세기 폭스에서 배급했다. 월터 랭 연출, 어니스트 리먼 대본. 율 브리너가 라마 4세, 데버러 카가 애너, 리타 모레노가 텁팀(Tuptim)으로 나온다.
율 브리너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으며 데버러 카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455만 달러로 제작해 23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흥행에 성공했다. 한국에서도 유명하며, 이 작품을 통해 율 브리너와 데버러 카를 알게 된 사람도 많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972년에 율 브리너 주연의 드라마도 나온 바 있다. 여주인공은 영국/미국 배우 서맨서 에거가 맡았는데 별로 평이 안 좋아 1기 13부작만 만들어지고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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