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For Whom the Bell To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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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 문화어: 《누구를 위해 종이 울리는가》[1])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장편 소설이다. 스페인 내전을 무대로 로버트 조던과 마리아의 사랑을 그린다. 제목은 17세기 영국 성공회 성직자인 존 던 신부가 쓴 시의 구절을 인용하였다. 1939년 3월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하여, 다음 해 1940년에 발표하였다. 1943년에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미국에서 자원한 반파시스트 군으로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 로버트 조던은 작전상 중요한 교량을 폭파하는 임무를 짊어지고 파블로가 이끄는 게릴라 부대에 협조를 요청했다. 그리고 마리아의 부모는 게릴라 부대에 숨어있다가 살해되고 로버트는 마리아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후, 그는 작전을 수행 중에 적의 계획이 바뀌어 자신의 임무인 교량 폭파가 무의미해질 것을 알았다. 그러나 연락이 되지 않아 작전을 중단하지 않았고, 쓸모없는 줄 알면서도 다리를 폭파하였다. 이 과정에서 중상을 입고 동료를 놓쳐 자신은 죽음에 이르게 된다.
스페인 내전은 20세기를 대표하는 굵직한 사건 중 하나였다. 이해 관계자들갼의 해묵은 갈등 해소에 평화적 방법이 아니고 격렬한 폭력이 동원되는 바람에, 인간성 상실이란 광풍이 휘몰아 치며 온나라가 아비규환의 생지옥이 되버렸던 말세적 대사건이었다.
스페인 내전의 원인은 여러가지가 꼽힐 수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오래전부터 대립해 온 이질적 스페인들간의 반목과 충돌이었다. 역사학자들은 18세기부터 스페인을 두개로 분류했었는데, 하나는 개방에 관대하고 급진적이며 범 세계적인 진보주의자들과 지식인들의 스페인이고, 다른 하나는 카돌릭만을 추종하고 폐쇄적이며 엄격한 민족주의적인 보수주의로 대표되는 스페인이었다.
문제는 단순히 사상으로만 나뉜 게 아니라 경제 사회적인 문제도 양진영의 대립과 알력을 증폭시켰다. 스페인 독감과 세계적인 대공황으로 서민들의 삶은 곤두박질 치는데, 엄청나게 편중된 부를 소유한 기득권층의 삶은 불황과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2,400만 인구 중 1%도 안되는 지주와 카돌릭이 전체 농지의 42%를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자연히 불만으로 팽창된 민심은 1936년 2월 총선거에서 좌파를 선택했다. 새로운 좌파 공화국 내각은 집권하자마자 카돌릭 교회와 기득권층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우파성향으로 분류된 고위 군인이나 관료들을 지방의 한직으로 밀어냈다. 하루아침에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이들의 불만과 불안감도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급기야는 식민지였던 모로코로 좌천된 프란세스코 프랑코 (Francesco Franco) 장군이 1936년 7월 17일 휘하의 현지 스페인 정규군을 히틀러가 제공한 항공기와 군함을 이용하여 전격적으로 본토로 이동시키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내전 초기에는 공화국 정부군 쪽이 우세한 듯 보였다. 주요 도시가 이미 장악되어 있었고 무기, 자원, 외화 모두 공화국 정부군이 압도적으로 유리했기때문이다. 그런데 공화국 진영 내부에서는 여러 정파가 의견 일치를 보이지 못했고, 내전의 정체성에 대해 소모적인 논쟁만 일삼았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실전 경험을 갖춘데다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반란군 쪽이 절대적인 우세를 보였고, 드디어 1939년 3월 28일 반란군은 마드리드를 함락하며 승리를 거두고, 프랑코 장군은 총통과 육해공군을 아우르는 대원수 자리에 올랐다.
약 2년 8개월 동안 진행된 내전에서 약 60만명 정도의 사람들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 되고 있으며, 대충 50만명의 사람들이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을 틈타 남미나 프랑스로 망명했다고 한다. 그리고 내전 이후에도 1975년 프랑코가 죽기 전까지 정치적인 탄압과 복수극이 계속되었다. 전쟁 통에
만들어진 상처와 응어리가 그만큼 깊고 컷다는 뜻이겠다.
스페인 내전은 유럽은 물론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는데, 소련과 멕시코는 공화국 정부군을, 독일과 이탈리아는 반란군을 지원했고 그들이 개발한 신무기를 검증하는 시험장으로 이용했다. 이를 보고 혹자들은 스페인 내전을 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특히 미국의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영국의 조지 오웰이 공화국 정부군 측의 의용군으로 참전해 관심을 더한 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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