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던지다_김형술(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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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근원은 지상이 아니다
(……)
꽃의 자리는 허공이 마땅하다
바람의 때를 기다려
제 스스로 바람이 되어
가볍게 꽃대궁을 떠나
허공에 몸을 던져 이룩하는
완벽한 자유
목숨의 완벽한 완성
꽃을 바라보는 일
지상의 모든 꽃을 사랑하는 일은
그 찰나의 떨림을 보는 일
온 가슴으로 그 떨림을 안는 일
(……)
○ 아파트 단지의 화단에서 맥문동이 보랏빛 꽃을 피웠다.
한 사내가 봄부터 기울인 정성이 피어난 것이다.
사내는 햇살 들면 거름을 치고, 비 오면 물길을 냈다.
바람 불면 사내도 바람 되어 함께 흔들렸다.
허공에서 이룬 맥문동의 개화를 사내가 경비실 창문으로 그윽하게 바라본다.
꽃이 지어낸 찰나의 떨림 따라 사내의 눈망울도 흐뭇이 떨린다.
한 해 살림을 다 이뤘다는 안도다.
지상의 모든 꽃을 사랑하는 일이고,
온 가슴으로 그 찰나의 환희를 끌어안는 일이다.
아파트 단지가 보랏빛으로 타오른다.
<고규홍·나무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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