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 743 -김영승(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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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 743 -김영승(1959~)
키 작은 선풍기 그 건반 같은 하얀 스위치를
나는 그냥 발로 눌러 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선풍기의 자존심을 무척 상하게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나는 선풍기한테 미안했고
괴로웠다
―너무나 착한 짐승의 앞 이빨 같은
무릎 위에 놓인 가지런한 손 같은
(…)
어린이 동화극에 나오는 착한 소녀 인형처럼 초점 없는 눈으로
‘아저씨 왜 그래요’ ‘더우세요’
눈물겹도록 착하게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
이 더운 여름
반 지하의 내 방
그 잠수함을 움직이는 스크루는
선풍기
(…)
선풍기를 발로 눌러 끄지 말자
공손하게 엎드려 두 손으로 끄자
(…)
Begin the Begu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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