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분-최하림(1939~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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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최하림(1939~2010)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날 아침 하도 추워서 큰 소리로 하느님 정말 이러시깁니까 외쳤더니 꽁꽁 얼어붙은 고드름이 떨어지며 슬픈 소리로 울었다 밤엔 눈이 내리고 강얼음이 깨지고 버들가지들이 보오얗게 움터 올랐다 아이들은 강 언덕에서 강아지야 강아지야 노래 불렀다
나는 다시 왜 이리 봄이 빨리 오지라고 외치고 싶었으나 지난 일이 마음 쓰여 조심조심 숨을 죽이고 마루를 건너 유리문을 열고 속삭였다 아무도 모르게 작은 소리로 봄이 왔구나 봄이 왔구나라고
□‘큰 소리’로 외쳐 얼음이 깨어졌구나. 천신만고 끝의 기막힌 봄. ‘아무도 모르게 작은 소리로’ 속삭이는구나 이제. 삼가고 전전긍긍함이 이와 같구나. 봄이 행여 날아갈까 봐. ‘왜 이리 봄이 빨리 오지’ 싶어 못 미더운 마음마저 없지 않구나. 봄인가? 춘분을 맞아 나도 조심조심 소리 죽여 혼자 묻는다. 1980년대 후반의 시. 춥고 혹독했던 1970~80년대에도 최하림의 고뇌와 성찰은 신실함을 잃지 않았다. <김사인>
Larger Than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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