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밤-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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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밤-나희덕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그곳이 멀지 않다』 (문학동네 2022)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어둡고 까마득한 길을 혼자 걷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 멀리 불을 밝히고 있는 목적지는 당연히 보이지 않고요. 하지만 길을 걷고 있는 나 자신만큼은 의심하지 않기로 합니다. 어디로 향할지 모를 길이기에 걸음을 재촉합니다. 두 다리에 힘을 줍니다. 생각해보면 지나온 날들도 그랬습니다. 걷지 않아도 될 길을 지난 적도 있었고 중간에 방향을 잃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과거 내가 지났던 모든 여정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습니다. 지름길이 펼쳐진다면 좋겠지만 에둘러 빙 돌아가야 하는 에움길도 상관없습니다. 지금 나의 길이 외길이자 한길입니다.
※시 전문은 joongang.co.kr/sunday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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