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찬노숙(風餐露宿) -장철문(1966~ )
페이지 정보

본문
%20-%EC%9E%A5%EC%B2%A0%EB%AC%B8(1966~%20).jpg)
풍찬노숙(風餐露宿) -장철문(1966~ )
열무 솎듯 쑥쑥 뽑아서 박스에 던졌다
박스를 들어 문밖에 냈다
서너 박스는 재활용 쓰레기로 내고
너덧 박스는 주위에 돌리고
서너 박스는 동네 도서관 사서에게 맡겼다
정신의 한 모서리가
해빙에 어긋난 축대처럼 헐거워졌다
어젯밤 참 편안하게 잤다
잠자리에 누워서
웃풍이 숭숭 드는 정신의 남루를 바라보았다
미련의 골재들이 뽑혀나간 집이
숭숭 넓어서
오늘 아침, 이사 나가기가 아깝다
흥부네 까대기에 누워서 보는 일출의 아침이다
□젊은 시절에는 책을 읽고 모으는 일이 재산을 늘리는 일보다 더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사면이 책으로 둘러싸인 방을 갖고 싶었고 책과 함께 생을 밀어붙이리라 다짐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책장에 빡빡하게 꽂힌 책들의 무게감이 삶을 누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이사를 하면서 책을 버린 경험이 시인에게 무한한 자유와 여유와 넓이를 선사했다. 덜어내고 비워내고 나누는 일 때문에 풍찬노숙을 한다고 해도. (안도현)
Heroin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