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호일 (漢陽好日)-서정주 (1915~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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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호일 (漢陽好日)-서정주 (1915~2000)
열대여섯 살짜리 소년이 작약(芍藥)꽃을 한 아름 자전거 뒤에다 실어 끌고 이조(李朝)의 낡은 먹기와집 골목길을 지내가면서 연계(軟鷄)같은 소리로 꽃 사라고 웨치오. 세계에서 제일 잘 물디려진 옥색의 공기 속에 그 소리의 맥(脈)이 담기오. 뒤에서 꽃을 찾는 아주머니가 백지(白紙)의 창을 열고 꽃장수 꽃장수 일루와요 불러도 통 못 알아듣고 꽃 사려 꽃 사려 소년은 그냥 열심히 웨치고만 가오. 먹기와집들이 다 끝나는 언덕 위에 올라서선 작약꽃 앞자리에 냉큼 올라타서 방울을 울리며 내달아 가오?
□작약꽃을 한 아름 실은 자전거다. 한옥마을 그윽한 골목길을 열대여섯 살 소년이 꽃 사려 외치며 간다. 봄이 깊을 무렵이겠고, 시간은 아침상 치우고 한숨 돌린 오전쯤이 어떨까. 이쯤으로 족히 상쾌하지만, 여기서 그치면 미당이 아니다. 액센트가 두 군데 더 있다. 뒤에서 창을 열고 불러도 못 알아듣고 그냥 열심히 외치고만 가는 장면이 그 하나. 말할 수 없이 생기로운 향기가 난다. 또 하나는, 골목 끝 언덕 위에서 앞자리에 ‘냉큼’ 올라타 방울을 울리며 내달아 가는 대목. 옥빛의 봄 공기를 그 방울 소리는 얼마나 영롱하게 쟁그랑 쟁그랑 울리는가. 소년 역시 고달픈 가운데서도 씩씩할 것이다. 시집 <동천>(68)에 수록된 시. <김사인>
Fiddler's G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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