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일 - 김해자(19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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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일 - 김해자(1961~ )
거기, 밖이 무너지고
여기, 안으로 삼켜져
눈 감는 음절들
거기까지 너였다,
여기까지 나였다,
경계가 차츰 무뎌지고 무너지다
문득 모든 말들이 끊긴다
하지 못한 말,
이미 한 말,
들이키고서야 합쳐지는 입과 입
여기서부터 검은 숲,
침묵이 범람한다
말하면서 동시에 사랑할 수 없다
나조차 잊어버려야 나로 돌아갈 수 있다
너조차 잊어버려야 너에게 들어갈 수 있다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말했다. 말은 오해의 근원이라고.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를 통해 인류에게 건네고 싶은 메시지의 핵심이 이것인지 모른다. 말이 오해를 낳고, 오해가 무기를 만들고, 무기가 전쟁을 일으킨 역사의 사례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나와 너의 관계도 말에서 시작하고 말에서 끝난다. 입과 혀가 만든 소리를 집어삼킬 수 없을 때 너와 나의 관계는 구겨지고 무뎌지고 무너진다. 말의 폐해는 합일을 방해하고 관계를 단절시킨다. 마지막 두 줄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나조차 잊어버려야 나를 찾는 거지. 안도현
Ticket To The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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