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선생님 -정양(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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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선생님 -정양(1942~)
중간고사 화학시험은
문항 50개가 전부 ○X 문제였다
선생님은 답안지를 들고 와서
수업시간에 번호순으로 채점결과를 발표하셨다
기다리지도 않은 내 차례가 됐을 때
“아니 이 녀석은 전부 X를 쳤네, 이 세상에는
옳은 일보다 그른 일이 많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제대로 채점하면 60점인데 기분 좋아서 100점”
(…)
백발성성한
지금도 그 점수를 믿지 않지만
이 세상에는 세월이 흐를수록 그른 일들이
옳은 일보다 많아지는 것도
나는 아직 믿지 않을 수가 없다
□요즘 같았으면 이 선생님은 ‘점수 조작’으로 한바탕 곤욕을 치렀을 것이다. 시의 배경은 1950년대 말, 공정한 분배는커녕 정치적 부패가 극에 달했던 때다. “옳은 일보다 그른 일이 많다는” 인식으로 사는 교사는 부조리한 시대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화풀이라도 하고 싶었나 보다. 지금은 모든 성과의 지표를 계량화하는 시대다. 점수는 성과를 객관화하지만 결국은 사람을 소외시킨다. 점수로 따지지 않는, 따질 수도 없는 일들을 인문학이라고 불러도 될까. 그러면 시대에 뒤떨어진 구닥다리로 비춰질까. (안도현)
The Reluctant Duel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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