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기다리다-이토야마 아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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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두 사람이 있습니다. 직장동료로 만났지만 죽이 잘 맞고 마음이 잘 맞아 친구 같은 관계가 되었지요.
그들은 어느 날, 엉뚱한 약속을 하나 합니다.
둘 중 하나가 갑자기 죽게 되면 서로의 하드디스크를 몰래 파기해주기로 하는 계약입니다.
물론 파기하기만 할 뿐 그 안의 것을 열어보는 행동은 하지 않기로 합니다.
그 비밀이 엄청난 국가기밀이거나 끔찍한 범죄의 증거 같은 것들은 아닐 겁니다.
‘남이 보면 곤란한 것’, ‘어쩐지 부끄러운 것’.
누구나의 하드디스크에도 그런 것은 깊이 숨겨져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중 하나인 후또짱이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납니다.
이제 둘 만의 장난 같았던 약속은 ‘나’의 몫으로 남겨지게 됩니다.
‘나’는 친구의 사무실에 몰래 숨어들어가,
별 모양 드라이버로 컴퓨터를 하나하나 분해해갑니다.
마침내 ‘은색 거울 같은, 고요한 원반’과 마주쳤을 때 독자인 저도 덩달아 숨을 죽였습니다.
약속은 지켜졌습니다.
세상의 모든 곡진한 애도는 약속의 형식을 띠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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