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_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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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제 몸 속의 자디잔 가시를 다소곳이 숨기고
오늘도 물 속을 우아하게 유영한다
제 살 속에서 한시도 쉬지 않고 저를 찌르는
날카로운 가시를 짐짓 무시하고
물고기는 오늘도 물 속에서 평안하다
이윽고 그물에 걸린 물고기가 사납게 퍼덕이며
곤곤한 불과 바람의 길을 거쳐 식탁 위에 버려질 때
가시는 비로소 물고기의 온몸을 산산이 찢어 헤치고
눈부신 빛 아래 선연히 자신을 드러낸다
(망각은 오늘도 평안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
시는 그러나 ‘한시도 쉬지 않고 저를 찌르는 날카로운 가시’를 직면하는 것이야말로 감추어진 존재의 비밀을 마주하는 일이라고 노래한다.
가시가 버려질 때 버려지는 것은 나의 삶이다.
가시는 만지면 아프지만 폐허를 밀어내고 무시하기에 바쁜 삶이 가식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각성하는 경험을 선물한다.
죽음을 은폐함으로써 소외된 삶을 ‘선연히 드러내는’ 가시의 통증이 얼마나 눈부신가.
가시도 잎이다. 겨울나무들이 가시처럼 하늘로 뻗어가고 있다.)
시인 손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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