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2부 장강의 영웅들 (289) 제37장 오월(吳越) 전쟁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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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장 오월(吳越) 전쟁 (4)
오ㆍ월 두 나라 군대는 취리(檇李) 땅 용문산(龍門山) 근처에서
마주쳤다.
서로 10리 간격을 두고 영채를 세웠다.
이튿날부터 두 나라 군사들은 한데 어우러져 싸웠다.
좀처럼 승패가 나지 않았다. 양측 모두 전심전력을 기울인 것이었다. 3일 연속 싸웠으나 아무런 성과가 없자 오왕 합려는 전략을 세로이 세웠다.
"영채를 오대산(五臺山)으로 옮겨라."
오대산은 취리(檇李) 북쪽에 위치한 산이다.
일종의 후퇴였다. 그는 월군(越軍)의 저항이 만만치 않은 것을 알고 일부러 후퇴하는 척하여 월군이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일거에 덮쳐들 작정이었던
것이다.
다음날 월왕 구천(句踐)은
싸움을 걸기 위해 영채를 나섰다가 오군이 오대산 기슭으로 옮긴 것을 알았다. 높은 구릉 위로 올라가
바라보니, 오군의 대오는 정연했고, 창과 갑옷이 햇빛에 눈부시게
번쩍이고 있었다.
구천(句踐)은 은근히
겁을 먹었다.
대장 제계영을 불러 말했다.
"오군이 저렇듯 형세가 대단하니 쉽게 무찌르지 못할
것 같소. 그렇다고 저들을 마냥 우리 땅에 둔치게 할 수도 없는 일.
어찌 무찌르면 좋겠소?"
제계영(諸稽郢)이
대답한다.
"정면으로는 깨기 어려우니 별동대를 조직하여 저들을
어지럽힌 후 공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구천(句踐)은 제계영의
말에 따라 별동대를 조직했다.
주무여(疇無餘)가
지휘하는 좌익 군사 중에 5백 명을 뽑고, 서안(胥犴)이 지휘하는 우익 군사 중에서
5백 명을 뽑았다. 그들은 각기 장창과 극(戟, 가지 창)을 꼬나쥐고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오나라 영채 양편을 공격했다.
그러나 오군 진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영채 주위로 높은 루(壘)를
쌓아놓고 그 뒤편에 궁노수를 배치해두었다. 별동대가 아무리 공격해대도 그들은 방벽 뒤에서 활만 쏘아댈
뿐 군사를 내지 않았다.
월(越)나라 별동대는
세 번이나 올라갔지만 오히려 희생자만 냈을 뿐 별다른 전공을 세우지 못했다. 월왕 구천(句踐)은 낙심했다. 어두운
얼굴로 한숨만 내쉬고 있는데 군사 범려(范蠡)가 말했다.
"정공법으로는 오군을 격파하기가 어렵습니다. 기계(奇計)를 쓰는 수밖에
없습니다."
"기계라면 무엇을 말함이오?"
"죄수들을 이용하여 적의 예기를 꺾은 후 일거에 들이치면
큰 성과를 거둘 것입니다."
그러고는 귓속말로 한참을 속삭였다.
구천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과연 기계(奇計)구려."
다음날 구천(句踐)은
사자를 도성으로 보내 명했다.
- 사형수 3백 명을
뽑아 데려오라.
며칠 후 사형수 3백 명이 월군 영채에 당도했다. 월왕 구천(句踐)은 그들을
모아 놓고 명했다.
"너희들은 어차피 죽을 목숨이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고국을 위해 봉사할 기회를 주겠노라."
그는 사형수들에게 할 일을 지시했다.
잠시 후, 3백 명의 사형수는
1백 명씩 3대(三隊)로 나누어 오군 진영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복장은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섬뜩했다. 상체는 벗겨진 채였고, 손에는 각자
커다란 칼을 거머쥐었다. 벗겨진 몸뚱아리에는 온갖 기괴한 문신이 새겨져 있어 더욱 음산했다.
오나라 군사들은 영채 안에 있다가 이 기괴한 행렬을 발견했다. 결사대인가, 생각하여 바짝 긴장했다. 그러나 결사대치고는 그 걸음걸이가 너무나
조용하고 느릿느릿했다. 오군(吳軍) 병사들은 활을 쏘는 대신 계속 그들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3백 명 사형수 중 선두에 선 1백 명이 오나라 진영 앞에 멈춰섰다. 한 죄수가 나와 오(吳)나라 군사들을 향해 외쳤다.
"우리들은 큰 죄를 지은 사형수들이오. 이제 그대들이 보는 앞에서 우리 스스로 사형식을 거행할까 하오."
말이 끝나자마자 일렬로 늘어선 1백 명의 죄수들은 일제히 칼을
들어 자기 목을 찔렀다. 선혈을 뿜으며 그들은 차례차례 쓰러져 죽었다.
고금을 통해 들어본 적이 없는 진풍경이었다.
영채 너머로 이 진귀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오(吳)나라 군사들은 기겁초풍했다.
"저게 무슨 일인가?"
"여기 와서 죽는 속셈이 뭐야?"
이렇게 떠들어대는 사이 두 번째로 1백 명의 죄수들이 영문 앞에
서서 또 칼을 뽐아 자기 목을 찌르고 죽었다. 그들이 죽자 그 뒤에 있던 일대(一隊)가 역시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고 자결했다.
이제 오(吳)나라
군사들은 놀라움을 넘어서 기가 질려버리고 말았다.
그때였다.
별안간 좌우 골짜기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일며 한 떼의 군사들이 벌 떼처럼 달려나왔다. 오군 장수 주무여(疇無餘)와
서안(胥犴)이 지휘하는 좌우익 군사들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오군(吳軍) 병사들은 느닷없는 월나라의 공격에 혼비백산했다. 얼떨결에 활을 쏘아대기는
했으나, 이미 영채 좌우의 누벽(壘壁)이 무너진 뒤였다.
뿐만 아니었다. 영채 바로 정면으로 월왕 구천(句踐)이 대군을 거느리고 벼락처럼 달려오고 있질 않은가.
그제야 월군의 계책에 속은 것을 깨달은 오왕 합려(闔閭)는 북을 치며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그들은 철저히 월군에 의해 포위된 것이었다.
"포위망을 뚫어라!"
악 쓰듯 외쳐대는 사이 홀연 한 장수가 그 앞에 나타났다.
월나라 대장 제계영이었다.
제계영(諸稽郢)은
합려를 보자 화살처럼 일직선으로 달려왔다. 그가 칼을 높이 쳐들었을 때 오군 장수 왕손락(王孫駱)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제계영은
합려를 버리고 왕손락을 맞아 칼을 휘둘러댔다.
그 틈을 이용해 합려(闔閭)는
영채를 벗어났다.
그가 막 북쪽을 바라보고 달려가는데 또 한 장수가 번개처럼 그에게로 달려들었다. 월군 선봉대장 영고부였다.
영고부(靈姑浮)는
다짜고짜 합려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합려는 기겁하여 상체를 뒤로 젖혔다. 칼날은 그의 얼굴 앞을
지나쳐 그대로 발등을 찍었다.
"아악!"
합려(闔閭)는 자신의
오른발이 끊어져 나간 것을 알았다.
고통을 참고 겨우 병차에 매달려 달리는데 다행히 오군 장수 전의(專毅)가 달려와 그를 호위했다. 왕손락(王孫駱)은 제계영을 맞아 싸우다가 오왕 합려가 부상당한 것을 알고는 재빨리 빠져나와 전의와 함께 합려를 모시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싸움은 일방적이 되었다.
월나라 군사는 신바람이 나서 달아나는 오군을 찌르고 베고 넘어뜨렸다.
월군(越軍)의 대승이었다.
제37장 오월(吳越) 전쟁 (5)
발이 잘려나가는 중상을 입은 오왕 합려(闔閭)는 10리 밖으로 달아나 형(陘)이라는 곳에서 패잔병을 수습했다. 더 이상 싸울 의욕을 잃었다.
"아아, 오자서의
말이 틀림없구나."
회군령을 내렸다
오군(吳軍)은 침울했다.
왕 합려의 부상이 몹시 심했기 때문이었다. 겨우 지혈을 하여
피를 멈추게 한 후 쉬지 않고 오성을 향해 달렸다. 그러나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합려(闔閭)는 더
이상 자신이 살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오나라 국경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수레를 멈추게 한 후 백비에게 말했다.
"세자 부차(夫差)를 불러오라."
오성에 남아 있던 부차와 오자서는 합려가 중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 황급히 달려왔다.
합려(闔閭)가 눈물을
뿌리며 오자서를 향해 말했다.
"내가 그대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 이 지경이 되었구려. 아아, 구천에 대한 원수를 어찌 갚아야 할지...... 나는 오자서(伍子胥) 그대만
믿겠소."
오자서는 침통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에서 늘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왕께서는 이번 패전에 대해 괘념치 마십시오. 쾌유하신 연후에 얼마든지
구천(句踐)에 대해 보복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왕 합려(闔閭)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미 틀린 것 같소. 내가 죽거든 그대는 부차(夫差)를
도와 나의 원수를 꼭 갚아주시오."
그러고는 이번에는 아들 부차의 손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부차야, 부차야. 너는 월(越)나라를 잊지
말라. 이것이 너에게 남겨주는 나의 마지막 부탁이다!"
부차(夫差)가 눈물을
뿌리며 대답하려는데, 합려의 입에서 검은 피가 한 움큼 쏟아져 나왔다.
놀란 오자서와 부차가 합려를 부축해 일으켰다. 그러나 합려의 숨은 이미 끊어진 뒤였다.
BC 496년(오왕
합려 19년) 여름의 일이었다.
부차(夫差)는 부왕
합려의 유해를 수레에 모시고 오성으로 돌아왔다.
오자서를 비롯한 백비, 왕손락 등은 예법에 따라 세자 부차(夫差)를 왕위에 올려 모시고 합려에 대한 장사를 치렀다. 장지는 파초문 밖 해용산(海慂山).
오늘날 소주 교외의 호구(虎丘)가
그 곳이다.
오왕 합려의 묘가 '호구(虎丘)'로 불리는 데는 그만한 내력이 있다.
부차(夫差)는 합려의
묘를 조영하는 데 10만 명의 인부를 동원했다. 삼중으로
곽(郭)을 만들고 봉분 안에는 어장을 비롯한 3천 개의 칼을 묻었다. 또 수은으로 연못을 만들어 금은옥으로 세공한
물새를 그 곳에 띄웠다.
그로부터 사흘 후였다.
무덤을 지키는 사람이 바라보니 합려의 능 위로 커다란 백호(白虎) 한 마리가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해용산을 호구산(虎丘山)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일설에는 백호(白虎)가
나타난 것은 이 시대가 아니라 합려가 죽은 지 270년이 지난 진시황(秦始皇) 때라고 한다.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제는 합려가 소장하고 있던 명검을
갖고 싶어서 해장산에 매장된 합려의 묘를 팠다.
도굴 중에 백호가 나타나 사람들을 위협했다. 그 바람에 도굴은
중지되고, 사람들은 해용산을 호구산(虎丘山)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진시황(秦始皇)은 끝내 합려의 칼을 찾아내지 못했다.
또 묘를 파낼 때 생긴 커다란 구멍에 물이 괴어 못이 되었는데, 그
못이 곧 '검지(劍池)'다. 지금도 소주 호구산에 가면 검지가 있다.
이제 부차(夫差)는
오나라 왕이 되었다.
그는 부왕 합려의 유언을 잊지 않았다. 그는 상당히 집요한 성격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월(越)나라로
쳐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 국상(國喪) 중에는 군사를 일으키는 것이 좋지 않습니다.
라는 오자서의 말에 따라 삼년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신의 복수심이 약해질까 두려워 시자(侍者) 열 사람을 궁전 좌우에 배치한 후 다음과 같이 외치게 했다.
- 부차야, 너는
월왕(越王)이 네 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겠지?
시자들은 부차가 궁전 안팎을 출입할 때마다 매번 이 같은 말을 큰소리로 외쳐댔다. 또 조정 신하들에게도 이 같은 말을 일러주며 인사로 대신하게 했다.
그때마다 부차(夫差)는
피눈물을 쏟으며 대답했다.
"내 어찌 월(越)나라를 잊을 리 있으리오."
그러는 한편 오자서와 백비에게 명하여 맹렬하게 군사들을 훈련시켰다.
태호(太湖)에는 늘
수군들이 나와 훈련에 임했고, 영암산 골짜기는 보병들이 진을 치고, 활을
쏘고, 나가고 물러나고 하는 함성소리로 오(吳)나라는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렇게 2년여가 흘렀다.
부차(夫差)는 상복을
벗었다. 수군과 육균의 훈련도 모두 마쳤다. 오나라 군사력은 2년 전에 비해 놀랍도록 강해져 있었다.
"이제야말로 월(越)나라에 대해 복수할 때다!"
마침내 부차(夫差)는
태묘에 제사를 올린 후 전군에 명을 내렸다.
- 월나라로 쳐들어가라!
오자서(伍子胥)가
총대장이 되었고 백비가 부장이 되었다.
오군(吳軍)은 태호
물길을 따라 수륙 양면으로 월(越)나라를 향해 일제히 공격해
들어갔다.
BC 494년(오왕
부차 2년) 봄의 일이었다.
제37장 오월(吳越) 전쟁 (6)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다.'
오왕 부차(夫差)의
대대적인 침공을 맞은 월왕 구천(句踐)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기다리고 있었기라도 한 듯 중얼거렸다.
- 가소롭구나 부차여. 이번에야말로
너를 죽이고 오(吳)나라를 멸망시키리라!
구천(句踐)은 모든
신료를 불러 오군을 맞이해 싸울 일을 의논했다.
그런데 중신들의 뜻이 구천과 같지 않았다.
대부 범려(范蠡)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나라 사람들은 지금 전왕 합려의 죽음을 철천지한(徹天之恨)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
월(越)나라를 치기 위해 지난 2년여 간 뼈를 깎는 훈련을 해왔다고 합니다. 그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하고, 그들의 사기는 산을 울릴 정도입니다. 이런
군대와 맞서 싸우는 것은 이롭지 못합니다. 군사를 내는 것보다는 굳게 지키는 것이 상책입니다."
대부 문종(文種)도
군대 내는 것을 반대했다.
"범려(范蠡)의 말이 옳습니다. 오자서의 군대는 이제껏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습니다. 대저 책략이란 일이 이루어질 것을 예상한 후 이행하는 것입니다."
"무작정 의욕을 앞세워 싸우는 것은 목숨을 내걸고 도박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왕께서는 굳게 지키시면서 몸을 낮추어 화친을 구한 후 패자(覇者)의 야망을 키우도록 하십시오."
평소 구천(句踐)은
이들의 말에 한 번도 따르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너무 달랐다. 구천은 노골적으로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다.
"맞서 싸우는 것을 피하고 지키기만 하라니, 나는 그대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소. 초(楚)나라를 정벌한 바 있는 합려도 나에게 패해 목숨을 잃었는데, 하물며 그 아들 부차 따위를 겁내다니!"
"겁내는 것이 아니라 적의 날카로운 예기가 무디어지기를
기다리자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굳게 지키자는 범려(范蠡)의 생각이나 화친을 도모하자는 문종(文種)의 생각은 다 좋은 계책이 아니오. 오(吳)나라는 대대로
우리와 원수지간이오. 그들이 쳐들어오는데 싸우지 않는다면 내 어찌 앞으로 이 나라를 통솔하겠소?"
이미 한 번 오군을 대파한 바 있는 구천(句踐)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
결국 범려와 문종의 의견을 기각하고 전군을 동원하여 정면으로 맞서 싸울 것임을 선포했다.
구천(句踐)은 친히
군사를 이끌고 물길을 거슬러 태호(太湖) 방면으로 진격했다.
두 나라 군사는 부초산(夫椒山)
아래서 맞부닥쳤다.
군사를 먼저 일으킨 것은 오왕 부차(夫差)였지만, 막상 싸움이 붙자 더 적극적인 공세를 취한 것은 월왕 구천(句踐) 쪽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자신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첫 싸움에서 부차는
구천에게 패했다. 오군(吳軍)은 1백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후퇴했다.
월왕 구천(句踐)은
신바람이 났다.
승세를 타고 오군을 추격했다.
3사(三舍, 90리) 거리를 물러난 오자서(伍子胥)가 전군에 새로운 명을 내렸다.
- 영채를 굳게 쌓되, 나가
싸우지 마라. 명을 어기는 자는 목을 베리라!
월(越)나라 군사는
사기충천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싸움을 걸어왔다.
그러나 오군 진영은 일절 싸움에 응하지 않았다. 쥐 죽은 듯
조용히 영채 안에만 틀어박혀 있을 뿐이었다.
부아가 치민 것은 오왕 부차(夫差)였다.
그는 오자서를 불러 다그치듯 물었다.
"어째서 싸움을 하지 않는 것이오?"
오자서(伍子胥)가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신의 몸에 병이 있어 지금은 나가 싸울 수가 없습니다."
한바탕 꾸짖음을 내리려던 부차(夫差)는 오자서가 아프다는 말에 노기를 가라앉혔다. 오히려 걱정하는 빛을
띠었다.
"적은 매일같이 싸움을 걸어오고 있는데 오자서(伍子胥)가 병에 걸려 싸울 수가 없다니, 이제 나는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오왕 부차(夫差)는
낙심했다.
이 정보는 세작(細作)들에
의해 월왕 구천의 귀에도 들어갔다.
구천(句踐)은 오자서가
와병중이라 나와 싸우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앙천대소(仰天大笑)했다.
"하늘이 나를 도와주시는구나. 오군의 사기는 지금쯤 땅에 떨어졌을 것이다. 이럴 때 총공세를 취하지
않으면 언제 또 기회를 맞이하랴!"
매사에 신중함을 기하는 범려(范蠡)가 구천에게 간했다.
"오자서(伍子胥)는 지략이 깊은 장수입니다. 그는 우리를 꾀려고 일부러 병을 앓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함부로 쳐들어가지 마십시오."
"의심도 병이오. 이때를
놓치면 후회해도 소용없소."
구천(句踐)은 범려의
간언을 일축하고 전군에 총공격령을 내렸다.
월나라 군사들은 북을 울리며 전함을 타고 상류를 향해 쳐들어 올라갔다. 그들이
부초산(夫椒山) 기슭 아래를 지나갈 때였다.
별안간 양쪽 갈대숲에서 수백 척의 배가 일제히 미끄러져 나왔다.
두말할 나위없이 오군(吳軍) 전함이었다.
그 배들은 빠른 속도로 진격하더니 불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적함이다!"
월(越)나라 군사들은
방향을 틀어 미끄러져 달려오는 오군 전함을 향해 화살로 맞대응했다.
그때 또 강의 상류쪽에서 커다란 북소리가 울려퍼졌다. 동시에
수십 대의 오군 전함이 무서운 속도로 구천(句踐)이 타고
있는 배를 향해 덮쳐들었다. 선수(船首)에는 오자서의 이름이 새겨진 깃발이 힘차게 나부끼고 있었다.
"오자서다!"
월(越)나라 군사들은
두려움과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병들어 누워 있는 줄 알았던 오자서(伍子胥)가 난데없이 자신들의 앞길을 가로막았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범려의 말이 옳았음을 깨달은 구천(句踐)은 친히 북채를 들고 군사들을 독려했다.
"두려워할 것 없다.
일제히 적함을 공격하라."
하지만 이미 예기가 꺾인 월나라 군사들이었다.
그들은 양쪽에서 퍼부어대는 불화살과 상류에서 내려오는 오자서(伍子胥) 전대(戰隊)의 위세에
잔뜩 겁을 먹었다. 허둥지둥하며 공연히 아까운 화살만 강물 속으로 쏘아댈 뿐이었다.
그때 북풍이 사납게 불어와 파도가 미친 듯이 날뛰었다.
오자서(伍子胥)가
이끄는 함대는 더욱 빠른 속도로 다가온 반면, 월나라 전함들은 소용돌이에 휘말려 기우뚱거렸다. 그 바람에 갑판 위에 서 있던 군사들 수십 명이 눈 깜짝할 사이에 강물 속으로 빠졌다.
바람이 잦아졌을 때는 월군(越軍)은 이미 삼면이 오군에 포위된 뒤였다.
오자서가 함교에 우뚝 서서 크게 소리쳤다.
"월왕(越王)은 들어라. 나 오자서가 선왕의 원한을 갚기 위해 여기 왔노라!"
외침이 끝남과 동시에 모든 배들이 일제히 월왕 구천(句踐)이 타고 있는 전함만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월왕 구천(句踐)은
기겁했다. 이제는 방향을 틀어 강 하류쪽으로 후퇴하는 수밖에 없었다.
"퇴각하라!"
배들이 일제히 머리를 돌려 하류로 향했다. 이에 오군(吳軍)은 신바람이 나서 월군(越軍)뒤를 추격하며 쉴 새 없이 화살을 퍼부어댔다.
월군(越軍)은 다급했다.
자기네 배끼리 서로 부딪쳤다.
월군 장수 영고부가 탄 배가 가장 먼저 뒤집혔다. 영고부(靈姑浮)는 물 속에 빠진 채 헤어나지 못했다. 선봉장 서안(胥犴)은
화살에 맞아 죽었다.
오군(吳軍)은 승세를
놓치지 않고 월(越)나라 군사를 마구 쏘아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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