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igue (권태 (L'Ennui, 1998)) (영어 자막)
페이지 정보

본문


소설과 영화가 동시에 출시될 때 주말을 즐겁게 보내는 방식은 둘을 동시에 해보는 겁니다. 소설을 재미 있게 읽고나서 영화를 보면, 이미 레서피의 비밀을 알고 나서 천재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의 식탁에 초대를 받은 느낌이 듭니다. 프랑스 영화가 이탈리아 원작에 매우 충실하게 제작됐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이 작품을 시대적 배경을 벗겨내고 읽었을 때 주제가 권태인지, 질투인지, 아니면 남자 여럿이 한 여자를 공유하는, 삼각적 공유의 테마를 다루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이들의 관심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탐색입니다. 그것을 위한 소재로 섹스를 빌려오기도 하고, 질투, 불신, 함정, 착각 같은 추상적 장치들을 마련하기도 합니다. 거의 무방비 상태에 있는 나이 어린 여인에게 성인으로서의 남성이 육체적 욕망의 통로를 따라 접근하는 방식, 그리고 그것을 통해 인간 본성의 비밀을 또 한꺼풀 벗겨보려는 시도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최근작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민음사) 에도 나옵니다. 그래도 권태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흡사 내키지 않은 기차 여행과 같은 답답함이 우리를 감싸고 있습니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혐오스러운 길동무와 함께 기차를 타고 가야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장편 '권태'에 나오는 디노는 체칠리아에게 악어 가죽 가방도 선사하고, 돈도 주고, 또 어머니의 대저택을 보여주면서 청혼도 합니다. 그녀를 소유하기 위해서, 아니 적어도 소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한차례의 섹스가 끝난 뒤 옷을 다 입은 그녀를 또다시 황급하게 범하는 이유도 권태 때문에 부식되는 욕망의 항아리가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컵의 부조리를 견딜 수 없을 때 그 컵을 벽에 던져 산산조각 내듯이, 디노는 체칠리아에게 굴욕에 가까운 심부름을 시켜 그녀의 자아를 건드립니다. 권태에 의해 단절된 관계를 잔인성을 통해 회복하려는 시도이지요. 그녀를 고통스럽게 만들어서 그의 실존을 확인하고 싶은 것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